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미세먼지 대란이 발생했다. 여느 때와 많이 다르다. 농도는 세어지고 예년에 비해 훨씬 긴 시간 지속되고 있다. 역대 최악의 신기록을 세운다. 미세먼지 사태는 모든 계층의 국민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특히 어린이와 임산부, 노인, 병이 있는 사람의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그동안 ‘미세먼지 현상’은 해마다 초봄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불청객 정도로 여겨졌다. 작년에도 왔고 내년에도 올 반갑지 않은 손님 정도로 여겨진 것이다. 그러니 제대로 된 근본 대책이 나올 리 없다. 미세먼지 대란이 찾아오면 위정자들은 ‘어서 지나가라’ 하면서 하늘만 쳐다봤다. ‘미세먼지 사태’가 지나가면 다 잊어버린다. 다음 해 미세먼지가 습격하면 똑같은 행태를 반복했다.

정부는 배출가스 5등급 경유 차량 운행을 제한하고 공공기관 차량 2부제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사태가 대란 수준으로 발전하고 국민들의 불만이 폭발하자 좀 더 강도 높은 대책을 내놓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정부는 긴급차관회의를 열고 ‘살수차 운행 확대, 차량 공회전 단속 강화, 다중이용시설 주변 물청소 등의 대책을 보완하고 불법소각 및 차량 공회전 단속을 강화’하기로 했다. 장관들도 대책을 마련한다면서 ‘현장’에 나타나기도 했다.

대통령은 ‘30년 이상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조기 폐쇄’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했다. 대통령은 중국과 협의해 긴급대책을 마련해 보라고 하면서 공동 비상저감조치 시행과 인공강우 실시를 검토해 보라고 했다. 공동 예보시스템 마련도 검토하라고 했다. 어린이집·유치원·학교에 대형 공기정화기를 설치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필요시 추경이라도 편성’해서 대책을 세우겠다고 했다.

대통령이 내놓은 방안은 현재 바로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거의 모두가 ‘검토’ 또는 ‘적극 검토’다. 체육관이나 학교 강당 같은 곳에 설치하는 대형 공기정화기 설치도 예산이 확보된 것도 아니다. 추경 편성도 미세먼지 사태가 자연재난 또는 사회재난으로 판단이 돼야 가능하다. 7월경 편성되는 추경 때는 미세먼지 위기는 지나간 시점일 테다. 사회재난 또는 자연재난으로 판정될 가능성은 낮다. 국회가 미세먼지 대책을 낸다고 시늉만 하고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장관이 내놓은 대책도 대통령이 내놓은 대책도 모두 사후약방문인데다 치료효과를 낼 수 있는 처방인지도 심히 의심스럽다. 지금 당장의 대책도 못되고 장기적인 대책도 못되는 임기응변의 땜질식 대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역대 정부가 반복해왔던 행동이다. 안전한 사회를 약속한 문재인 정부가 똑같은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 국민을 실망케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국내 미세먼지 배출량 30% 감축’, ‘강력한 미세먼지 관리 대책 마련’, ‘대통령 직속 미세먼지대책 특별 기구 신설’, ‘한중 정상외교 의제화’ 등을 공약했다. 진일보한 대책이다. 집권한 뒤 봄철 화력발전소 가동 중단 등 일부의 변화가 있었지만 획기적인 대책은 없었다. 공약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세월호 이후 생명안전사회를 갈구하는 국민들의 열망을 한 몸에 안고 집권했다. 국민 앞에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다짐하고 국민 가운데 한 명도 안전 때문에 눈물 흘리는 사람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국민들은 문재인 정부가 집권하면 안전해질 것으로 믿었다. 집권 직후에는 국민의 바람에 응답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처음만 그랬을 뿐 안전한 사회에 도달할 수 있는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근본대책’과 로드맵을 내놓지 않았다. 안전사고가 나면 그때그때 땜질식으로 대응하기를 반복했다. 미세먼지 문제도 마찬가지다.

미세먼지 대란을 대하는 자유한국당 태도는 의아스럽다. 겉으로는 심각한 표정을 짓고 고뇌하는 듯한 모습을 연출하지만 속으로는 정적을 궁지로 몰아넣을 절호의 찬스를 잡았다는 듯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황교안 대표는 미세먼지가 아니라 ‘문세먼지’라고 했다. 문대통령을 빗대 표현한 것이다. 그럴 시간에 구체적인 대책에 몰두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미세먼지 대란조차 반사이익의 소재로 쓰려하는 태도는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것 밖에 안 된다. 국회 의석 37%를 점유한 정당의 대표라면 미세먼지 대란 같은 전 국민이 피해를 보는 재난이 닥쳤을 때는 정쟁에 몰두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대안을 내 실효성 있는 법안을 만들고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는 모습을 보여야 마땅하다.

자유한국당은 지난 지자체 선거 직후 국민 앞에 무릎을 꿇고 모든 것을 바꾸겠다고 했다. 불과 8개월 전이다. 무엇을 바꾸었나 싶다. 국민의 건강 문제조차 정쟁거리로 삼고 있지 않은가. 지난 시절 집권당이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미세먼지 대책에 무심했던 자신들의 과거에 대해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는 게 첫째다. 모든 역량을 투입해서 미세먼지 대란 극복대책을 내고 집권당은 물론 진보정당을 포함한 모든 정당과 머리를 맞대는 모습을 보이면 어디 덧나나.

제1 당이자 집권당인 민주당은 미세먼지 대란에 무한책임을 느껴야 한다. 지금까지 무능한 모습을 보였다. 모든 새로운 안전대책은 기존 관계의 변화를 동반한다. 미세먼지 배출 기업과 공장, 장비, 시설, 차량, 항구 등에 대한 규제를 동반한다. 새로운 규제를 도입하면 반발하는 세력이 있게 마련이다. 촛불혁명으로 집권한 정당이라면 기존 관계의 변화에 따른 반발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민주당은 미세먼지 대란을 예측해 대책을 마련했어야 했다. 지금이라도 국민 앞에 종합대책을 제시하고 야당들과 소통해 미세먼지 입법과 국민건강 확보 대책을 제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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