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 남원=김도은 기자] 전북 남원 국립민속국악원에서 왕기석 원장이 “전통 판소리는 보존·계승하고 새로움은 끊임없이 창조해 나갈 것”이라면서 국악에 대한 가치와 앞으로의 포부 등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천지일보 2019.3.6
[천지일보 남원=김도은 기자] 전북 남원 국립민속국악원에서 왕기석 원장이 “전통 판소리는 보존·계승하고 새로움은 끊임없이 창조해 나갈 것”이라면서 국악에 대한 가치와 앞으로의 포부 등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천지일보 2019.3.6

 

최연소 국립창극단원으로 시작
무형문화재 제2호 판소리 보유
27년만에 첫 민속음악 전공자
독일판소리 완창 기립박수 受
“퓨전국악 끊임없이 창출돼야”

[천지일보 남원=김도은 기자] “K-Pop이 해외에서도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이 K-Pop도 판소리로부터 발전해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정 마니아들만 즐기는 음악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즐길 수 있는 음악이 국악입니다.”

국악에 대한 남다른 사랑을 드러낸 왕기석 국립민속국악원장의 말이다.

그는 최연소(17세) 국립창극단 단원으로 시작해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2호 판소리 예능 보유자이기도 하다. 지난 2월 25일 명창이기도 한 왕기석(57) 국악원장을 만나 국악의 현실과 발전 방향 등에 대해 들어봤다.

왕 원장은 먼저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처럼 전통 판소리는 보존·계승하고 새로움은 끊임없이 창조해 그 시대에 맞는, 그 시대가 가진 것을 담아내는 음악”이라며 “전통음악을 재해석하고 동시대와 호흡하는 예술성 높은 음악을 창작해 퀄리티가 담보되고 생명력이 요구되는 퓨전국악 등 새로운 음악이 끊임없이 창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립민속국악원은 서울 본원을 중심으로 지방 세 곳에 있다. 남원국립민속국악원은 민속 음악을 전문으로 설립됐지만, 민속 음악 전공자는 왕기석 원장이 27년 만에 처음이다. 그는 “국립창극단에서 33년 동안 작품활동을 하며 쌓은 노하우로 한국전통음악이 가지고 있는 감성과 선율을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국악이 과거의 음악으로 치부되지 않고 전 세계 모두가 즐기는 음악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왕 원장은 말뿐으로 끝나지 않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국립민속국악원의 대표공연으로 판소리의 맥을 잇는 창극과 판소리 다섯 바탕을 새롭게 해석했다. 또 어린이를 위한 창작 창극, 소재 공모전을 통해 제작한 창극 등 다양한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춘향의 굳은 절개를 창극으로 담은 ‘창극 청(靑), 춘향’, 전통과 창작을 아우르는 창극의 세계 ‘신판놀음’ ‘판에 박은 소리 Victor 춘향’, 어린이를 위한 판소리 동화 ‘소리꾼과 나무꾼’ 등 다양하다.

◆형 있던 국립창악단 놀러 갔다 캐스팅

지금은 국악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그의 어릴 적 꿈은 무엇이었을까. “어릴 적 꿈은 판·검사였다. 두 형이 국악 연습에 매진하는 것을 보고 먹을 것도 못 먹고 힘들게 연습하는 과정을 보며 국악을 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고 그는 회상했다. 그러나 운명이라고 해야 할까. 그는 일명 길거리 캐스팅으로 국악에 입문하게 된다. 왕 원장은 “팔자소관이라고 하지 않나. ‘왕기창 동생이니 목구성(목소리의 구성진 맛)이나 들어보자’고 하신 스승님을 만났다. 초등학교 시절 셋째 형인 고(故) 왕기창 명창이 국립창극단에 근무할 때 잠깐 놀러 갔다가 만난 것”이라고 입문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어려운 과정도 겪어야 했다. 지난 1986년 국립창극단 정단원에 입단해 3년째 되던 해(23살) 서울아시안게임 문화예술축제축전에 참가해 주인공을 맡았으나 앵콜 공연 과정에서 좀 늦었다는 이유로 주인공 역할을 박탈당했다. 이후 대사 한마디 없이 보따리만 들고 다녔다. 그러던 중 ‘88 서울올림픽’에서 춘향전을 만나 2~3년만에 다시 주인공으로 발탁되는 기쁨을 누렸다. 그는 “돌이켜보면 허규 스승님이 나를 한 번 꺾어주지 않았다면 내 인생이 어땠을까. 스승님은 ‘젊은 놈이 주인공 맡아서 자만해질 수 있다’고 판단하신 것 같다”고 말했다.

◆ 판소리 완창 후 터진 ‘앵콜’에 감동

왕 원장은 해외 공연도 자주 다녔다. 판소리에 대한 반응을 묻자 그는 “10년 전쯤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등 만찬 공연을 여러 번 했다”며 “한번은 판소리 완창을 원해 독일 베를린과 함부르크에서 했는데 반응이 상상 그 이상이었다”고 말했다. 이날 왕 원장은 공연 후 10분~15분 동안 기립박수와 앵콜을 받았다. 왕 원장은 “완창은 판소리 한마당을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5~8시간 정도 부르는 공연인데 앵콜이 연신 터져 나왔다. 그런데 저는 탈진해서 죽을 지경이었다”면서도 그날의 감동을 잊지 못한 표정이다. 이어 “그때 우리 전통음악도 세계화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봤다”고 덧붙였다.

왕 원장은 “이제는 완창 그러면 덜컥 겁나서 못하겠다”고 웃으며 “소리꾼들은 40대 후반부터 60대 초반까지가 사실 전성기”라고 말했다. 또 “장시간 공연을 해내는 것보다 얼마만큼 제대로 되는 소리를 들려주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왕기석 원장은 “국악뿐만 아니라 어떤 분야가 됐든지 어느 정도 경지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정말 철저하고 처절하게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 내야 한다”며 “내가 잘하고 싶다고 해서 잘하는 것도 아니고 오래 했다고 또 잘하는 것도 아니다”고 했다. 이어 “국악은 세월이 흐를수록 인생의 희노애락이 녹아 소리로 풀어내는 것”이라며 “남원은 국악의 성지다. 이 명성이 이어질 수 있도록 모든 사람에게 쉽고 재미있게 다가갈 것”이라고 말했다.

또 “각 연령에 맞는 창작판소리를 만들고 국민의 삶 속에 전통예술을 꽃피워 민속 음악의 맥을 이어가는 우리 문화의 본거지 역할을 다해 나갈 것”이라며 대한민국 창극 축제를 남원에서 하는 이유를 밝혔다. 왕 원장은 “소리가 뭐냐고 묻는다면 왕기석의 소리란 ‘임’이다. 마음속에 안고 있는 임이 있지 않은가. 조국 같은 가장 그리운 존재이자 가장 소중한 존재, 나를 있게 하는 절대자가 나에겐 소리며 ‘임’이다”고 말했다.

[천지일보 남원=김도은 기자] 전북 국립민속국악원. ⓒ천지일보 2019.3.6
[천지일보 남원=김도은 기자] 전북 국립민속국악원. ⓒ천지일보 20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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