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모이(베트남경제개방혁신정책)’, 1인 1당의 공산사회주의체제를 유지하면서도 변화를 이끌어 성공한 지구상 유일한 나라 오늘의 베트남을 상징하는 용어다.

베트남은 프랑스 식민지, 베트남 남북전쟁, 중국과의 전쟁(같은 공산국가 간의 전쟁) 등 외세와의 처절한 피의 역사를 겪으면서도 끈질긴 인내심과 자긍심으로 이겨낸 민족이다. 즉,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전쟁을 치른 미국과도 하루아침에 손을 잡았고, 1인 1당 공산체제이면서도 자유경제체제를 받아들이는 등 전형적인 실리주의 국가다.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지켜본 제2차 북미정상회담은 지난달 22일 오후 하노이 발 ‘회담 결렬’이라는 속보로 온 세계에 긴급 타전됐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핵을 포기하면 공산국가 베트남 같이 경제 발전을 지원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었고, 김 위원장 역시 관심을 보임으로서 하노이 회담은 전격성사 됐다.

하지만 결렬이라는 회담결과로 당분간 휴업상태로 머물러야만 할 것 같다.

그렇다면 북한 김 위원장은 2박 3일 4500킬로를 66시간이나 달려왔고, 또 트럼프 대통령은 지구 한 바퀴를 비행기로 날아왔으면서 왜 결렬됐을까. 물론 여러 전문가들의 견해와 분석은 지금 이 순간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협상의 최대 쟁점은 북한 입장에선 지금까지 비핵화 조치를 충분히 해 왔으니 그에 상응하는 제재 해제를 해 줘야 한다는 근본 인식과, 미국은 영변핵시설 폐기 외 +알파 즉, 비공개 핵시설은 물론 대량살상무기까지 공개해야만 해제가 가능하다는 근본 인식의 충돌이다. 이 대목에서 양측이 풀 수 없는 인식 차이의 한 가운데는 바로 북한 ‘영변핵시설’을 포함한 ‘비핵화’에 대한 모호하고 상충된 개념정리다.

상호 이 영변과 비핵화에 대한 개념상 인식의 차이를 좁히고 극복하지 못한다면 북한 핵문제 해결은 어쩌면 공염불이 되고 미제로 남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영변은 어떤 곳인가. 한마디로 영변은 북한 핵의 전부나 다름없다. 북한에 산재된 핵시설이 여러 곳 있다고 하지만 영변의 성격만큼은 남다르다는 점부터 인식의 공유가 선행돼야만 핵협상의 실마리가 풀린다. 물론 영변 핵시설은 이미 고철수준이라는 일부 전문가들의 견해가 있지만 북한입장에선 그렇다는 의미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시대에 이르기까지 영변은 북한 핵의 과거 현재 미래가 고스란히 담긴 곳이다. 이러한 영변을 폐기하겠다는 것은 다 포기한다는 개념이 깔려 있으며, 명예와 자존심이 걸린 최고의 양보라 스스로 여기는 것이다. 그리고 유엔 제재 11개 조항 중 인민의 생존에 달린 5개 조항만 풀어달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북한은 인민을 살리기 위해선 자존심까지 버리면서 협상에 임한 것이라 볼 수 있으며, 미국의 협상의지에 의문을 갖는 것도 무리는 아닌 듯싶어 보인다.

반면 미국은 어떠한 명분과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에 위협을 주는 북한 핵 자체며, 나아가 국내 정치적 상황으로 볼 때 핵협상의 근본적·현실적·실질적 해결이다.

즉, 양측의 협상 결렬의 근본 배경에는 이와 같이 ‘명분과 현실’이 맞섰으며, 나아가 상호 비핵화에 대한 개념정리가 서 있지 않은 상태에서 두 개의 보따리를 내놓고 갑론을박해온 길고긴 실무협상이었다. 이는 어쩌면 미국의 정치적 상황 등을 고려한 고도의 핵협상 전략이었든지, 아니면 즉흥적 판단이었든지 간에 아무튼 예견된 결렬사태로 봐야 한다. 그러면서도 양측은 협상여지와 의지를 보이는 모양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정부 역시 운전자 혹은 중재자 등의 욕심이 앞서 조급증을 내며 의욕과 성과에 급급해 자충수를 둬선 안된다. 전쟁에서 패장의 덕목 중 제 일번은 자기 수(數)를 적에게 보이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북한은 영변 핵 폐기와 관계없이 핵개발이 지속될 것이라는 유수 언론의 보도와 전문가 견해는 가짜뉴스가 아닌 현실이라는 점이다.

이제 필자는 말하고 싶다. 북미 간 경제 내지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한반도 머리 위 핵은 예측불허다. 따라서 핵을 머리 위에 둔 평화 퍼포먼스는 우리정부부터 고려돼야 한다.

아무리 협상의 여지가 남아 있다 하더라도 살펴본 인식의 차이가 좁혀지지 않는 한 완벽한 협상은 역시 불가능하다.

그래도 답을 찾아야만 한다. 협상 실패의 가장 근본 원인은 바로 상호 신뢰다. 북한은 지금까지 한 번도 약속을 지킨 적이 없었고, 미국과 남한은 가변성 있는 정권 임기며 변화무쌍한 대북정책이다. 이는 뼛속 깊이 박혀있는 상호 불신의 깊은 골이다. 이 불신이 해결되지 않는 한 한반도 비핵화는 늘 한계가 따르며 요원할 수밖에 없다.

이 때 필요한 것은 동서냉전을 종식시킨 고르바초프와 레이건의 결단과 같이 세계 평화를 위한 양 지도자의 과감한 결단이다. 그러나 현 상황으로선 그럴 가능성 역시 희박하다.

이 불신의 벽은 정치‧외교적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의 방법으로는 어차피 허물 수 없다.

결국 핵 없는 세상, 진정한 지구촌 평화를 위해 이해관계 없이 오직 헌신만 해온 평화의 메신저 즉, 평화의 사자의 중재로만이 가능하다. 동서고금 성인들의 입과 경서는 바로 평화의 사자인 이 ‘아이’ 하나를 알려 왔음을 깨달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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