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용 시민주권 홍보기획위원장

최근 트위터를 뜨겁게 달군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과 문용식 나우콤 대표 사이의 설전은 이 시대의 첨예한 이슈 몇 가지를 환기시켰다. 이 사건은 트위터에서의 말투와 SSM(기업형 슈퍼마켓)과 대기업의 윤리, 동네 피자와 대기업의 초저가 피자의 공생문제 등을 함유하고 있다.

그런데 이마트의 초저가 피자로 인해 동네 피자가게가 심각한 매출감소에 시달리는 현실이 이슈가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정작 이 논쟁의 이면에 가려져 있는 일부 대기업의 윤리문제는 별로 주목받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다름 아닌 대기업의 ‘회사 기회유용(機會流用)’이란 해묵은 논쟁이다.

‘회사기회 유용’이란 회사에 이익이 될 수 있는 사업 기회를 일반 주주가 아닌 대주주 등 개인이 유용해 이익을 얻는 것을 말한다. 오너의 개인회사에 다른 계열사들이 각종 일거리를 몰아주는 방식으로 수익을 올려줌으로써 결과적으로 오너의 재산을 불려주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이마트 피자를 예로 들어보자. 이마트 피자를 운영하는 업체는 신세계그룹 비상장 계열사인 조선호텔 베이커리다. 5년 전 신세계그룹인 조선호텔에서 분리되면서 정용진 부회장의 여동생인 신세계 부사장 정유경이 지분 40%를 사들였다(정용진은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막내딸이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동생인 신세계 회장 이명희의 아들이다).

즉 오빠 회사에서 동생 회사가 피자를 팔고 있는 것이다. 이마트에서 판매하는 피자의 매출이 전체 매출의 90% 이상이나 된다. 이를 잘 분석해보면 조선호텔이나 혹은 다른 피자 공급업체, 이마트 등이 벌 수 있었던 돈을 정 부회장의 여동생인 정유경이 챙기고 있는 셈이다. 이는 주주 일가가 신규 사업에 진출함으로써 주식회사가 돈을 벌 기회를 침해한 회사 기회유용의 전형적인 사례다.
 
이런 예는 비단 신세계뿐만이 아니라 재벌가에선 비일비재하다. 더구나 그 방식은 더 노골적이고 조직적인데다 규모도 방대하다. 대개는 이런 식이다. 유망한 사업이 있으면 새로 비상장 회사를 차린다. 이어 모기업과의 사업을 통해 인위적으로 매출을 부풀린다. 그렇게 성장한 자회사의 지분을 모기업이나 시장에 되팔면 오너 일가는 큰 부자가 된다.

4년 전 문제가 됐던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의 비자금 사건의 배경도 기회유용이다. 현대차는 2000년 말 물류회사 글로비스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정몽구 회장 부자가 50억 원을 내서 100% 출자했다. 그 후 현대차그룹이 물량을 몰아준 덕에 매출액은 10년 만에 16배가 뛰었다. 50억 원의 지분가치는 현재 3조 5천억 원이다. 현대자동차로서는 물류사업의 기회를 최대주주인 오너 부자에게 편취당한 것이다.

경제개혁연구소가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1개 기업집단 지배주주 일가 71명의 회사기회 유용을 통한 부의 증식 규모는 순자산가치 기준 3조 5712억 원, 시장상대가치 기준으로 계산할 경우 총 3조 9748억 원에 달한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초기 투입 금액은 모두 4970억 원에 불과해 투자금액 대비 10배 가까운 고수익을 거뒀다는 점이다.

특히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회사기회 유용을 통해 가장 많이 부를 증식한 것으로 나타났다. 순자산가치 기준으로 정의선 부회장은 7520억 원, 최태원 회장은 5390억 원의 이익을 얻었다.

회사 기회유용은 과거부터 논란이 됐다. 특히 이 방법이 재벌가의 편법 상속수단으로 악용된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참여정부 시절인 2007년 법무부가 ‘회사 기회 편취 금지조항’을 신설하는 상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대기업 이해집단인 전경련이 반발한데다 보수적인 경제지들도 시장경제 논리에 어긋나고 외국의 선례가 없다며 이에 동조하고 나서 현재도 그 법안은 국회에서 표류 중이다. 하지만 회사법 전문가들에 따르면 회사 기회유용금지의 원칙은 미국 회사법의 근간일 뿐만 아니라 우리 이웃 일본에서도 중시하는 원칙이라고 한다.

심지어 동남아국가인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에서도 엄격히 회사 기회의 편취를 금하고 있다. 이번 피자논쟁이 회사 기회유용 금지의 법제화에 새로운 전기가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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