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란

정대구(1936~  )

나이 한 살 더 먹는 새해 첫날 아침
설레는 세뱃돈 받고
설설 끓는 떡국 두세 그릇 먹고
아이들 가슴 설설 설레어 ‘설’

해마다 찾아오는 새해 아침
떡국 반 그릇도 못 먹고 억울하게 나이 한 살 더 먹어
늘어나는 주름살 서러워
할아버지 할머니 섧고 서러워 ‘설’

 

[시평]

어제그제 설을 쇠었다. 흔히 구정(舊正)이라고 부르는 우리 전래의 명절 ‘설’. 우리의 어린 시절 설 전날이면 마음이 설레어 잠을 못 잤다. 설이나 돼야 설빔이라고 해서 새옷 한 벌 얻어 입을 수 있고, 설날이라고 해서 고기가 들어간 떡국 한 사발 먹을 수 있고, 어른들께 세배를 하면 세배돈이라는, 여느 때는 만져보지도 못하는 돈도 생기던 그 시절. 설날은 정말 마음이 설레는 날이 아닐 수 없었다.

이렇듯 마음이 설레어 잠을 못자는 우리들에게 어른들은 설날 전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고, 더욱 잠을 못 자게하곤 했다. 그러나 어린 우리들은 설렘도, 눈썹이 센다는 속설도 이기지 못하고 깜박하고 잠으로 떨어져 버린다. 잠이 든 우리들을 놀리기 위해 나이가 좀 든 형이나 누나들은 우리의 눈썹에 하얀 밀가루를 발라, 우리가 잠을 이기지 못하고 잠이 들어버려 눈썹이 그만 세어버렸다고 놀리곤 했다.

여하튼 설날은 어린 우리들에게 정말로 즐거운 우리의 명절, 가슴 설설 설레는 ‘설’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제 나이가 들고, 정말 머리나 눈썹이 하얗게 세어버린 늙은이가 된 우리들. 그래서 떡국 한 사발은커녕 반 사발도 겨우 먹으며, 억울하게 나이만 한 살 더 먹어야 하는 명절, 설. 그래서 늘어나는 주름살 서러워, 할아버지 할머니 섧고 서러운 ‘설’이 되고 있구나.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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