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순휘 한국문화안보연구원 사무총장

1950년 6월 25일 북한공산군의 기습공격에 의하여 벌어진 동족상잔의 비극은 국군의 죽음을 무릅쓴 방어와 미군의 적극적인 참전으로 지연전을 수행하면서 북괴군의 공세를 약화시켰고,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을 계기로 대반격에 성공하여 미군을 중심으로 한 유엔군과 한국군은 파죽지세로 북진공격을 할 수 있었다. 북한의 동부지역을 책임진 미 제10군단(미 해병 제1사단, 미 제3사단, 미 제7사단)과 국군 제1군단(제3사단, 수도군단)의 11월 21일 압록강 변의 혜산진을 점령하는 신속한 진격으로 곧 승리로 종전이 될 것 같은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그러나 미군은 중공군의 유격전식 인해전술의 위협을 모른 채 공격을 하였고, 결국 중공군에게 장진호 일대에서 완전히 포위되는 위기에 빠지게 되었다. 바로 이 포위에서 살아 돌아온 전투가 ‘장진호전투(일명 초신전투)’이다.

장진호전투는 1950년 11월 27일부터 2주일간 미 해병 제1사단이 개마고원 근처 장진호 일대에서 중공군 제9병단(8개 사단)을 상대로 영하 40℃의 혹한 속에서 싸운 처절한 전투를 말한다. 장진호전투에서 동부전선의 미 제10군단과 한국군 제1군단은 포위섬멸하려던 중공군 제9병단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으며, 그 결과 중공군의 함흥 방면 진출을 2주간이나 지연시켰고, 아군 10여만 명의 전투력을 보존하여 무사히 흥남철수를 성공할 수 있었다.

장진호를 둘러싼 지형은 해발 2000m가 넘는 한반도에서 가장 추운 곳일 뿐만 아니라 겨울 평균기온이 영하 30℃ 이하이고 밤이 되면 영하 40℃로 내려가는 살인적인 추위가 있는 곳이다. 함흥에서 장진호까지 북으로 100km나 진출한 미 해병대의 보급로는 이미 얼어붙어 버린 최악의 상태였으니 보급차량과 장비차량은 길에서 꼬리를 문 채로 적의 공격표적이 되었다.

계곡의 칼바람까지 불어대니 체감온도는 영하 50℃ 이하가 되었고, 적보다도 우선 동상과의 싸움부터 해야 하는 미 해병대는 그야말로 진퇴양난(進退兩難)의 죽음 가운데 빠져버린 상황이었다.

중공군의 주야로 연속되는 포위공격은 미 해병대 용사들의 생존의지를 말살하려고 달려들었지만 흔들리지 않고 공지합동공격을 통하여 적들을 사살하면서 몇 겹의 포위망을 뚫었고 끝내 철수에 성공한 미 해병대의 전투는 분명히 승전으로 전사는 기록하고 있다.

당시 사단장 올리버 스미스 소장의 “지금 퇴각하는 것이 아니라 후방을 향해 이동하는 것이다. 다른 방향으로 새롭게 공격해 가는 것이다”라는 외침은 부하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었고, 미국 국민들에게도 희망과 감동을 주었던 유명한 실화이다.

바로 이러한 자존심 있는 지휘관이 있었기에 1950년 11월 27일부터 12월 11일까지 비록 3673명의 전사상자와 3657명의 비전투사상자(동상환자)를 냈지만 중공군 7만여 명을 살상한 혁혁한 전공을 세워 ‘위대한 미 해병’의 승리 역사를 새롭게 만든 것이었다.

장진호에서 포위망을 뚫고 탈출에 성공한 미 해병 제1사단의 이 전투는 미 제10군단의 주력과 한국군 제1군단의 무사한 함흥과 흥남으로의 철수를 보장하는 성공적인 전투였다. 이어진 흥남철수작전에서는 아군병력 10만 5000명과 피난민 9만 8000명을 193척의 함정으로 해상철수를 시킬 수 있었던 한국판 덩케르트철수작전이었던 것이다.

지난 10일 장진호전투 60주년 기념행사에 60년 전 그들이 싸웠던 대한민국을 다시 찾은 미 해병대의 노병들은 증언을 통하여 “포위당한 공포에서 죽음의 두려움과 맞서 싸워야 했으나 전우들에게 겁쟁이로 낙인 찍히느니 차라라 죽는 게 더 낫다는 용맹스런 정신이 결집이 되어서 일사불란한 전투가 가능했었다”고 말하면서 죽은 전우들 생각에 눈물을 흘리었다.

국방부는 한미연합사와 공동으로 장진호전투를 기념하는 성대한 행사를 기획하여 참전용사와 그 가족들에게 감사의 시간을 마련했지만 몇 가지 아쉬운 점을 언급하고자 한다.

오늘날 우리가 “왜, 무엇을 위하여 기념하고자 하는 것인가?” 하는 자문을 해본다. 자칫 기념을 행사로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를 재고해보아야 한다. 행사가 그럴듯한 행사로 포장되어서는 안 되며, 국민적 관심과 진정한 의미로 기념될 때 비로소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기념은 마음속에 영원히 잊지 않도록 기념하는 것이 행사보다 더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우선 60년 전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헌신한 미국을 포함한 유엔군 참전국들과 용사들을 위해 연례적인 이벤트성의 행사로 기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승기념비’ 제막식 같은 영구적인 기념사업으로 한 단계 개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장진호전투에 대한 기념행사를 하면서 정작 온 국민이 평상시 추념할 수 있는 전승기념비가 없다는 것은 아쉬운 일면이 아닐 수 없다.

한미동맹은 벌써 57주년째를 지나고 있으나 국내 어디에도 ‘한미동맹기념관’조차 공식적으로 없다는 것은 국격차원에서 반드시 검토되어야 하고 ‘유엔군참전기념관’도 종합적인 규모의 공식건물조차 없다는 것은 거듭 재고할 국가적인 과제라고 볼 수 있다. 더욱이 다음 세대들이 진정으로 감사하며 조국을 사랑할 수 있는 ‘안보공원’이 조성되어서 일제침략관·한미동맹기념관·유엔군참전기념관 등이 국민교육의 도장으로 자리 잡아야 할 것인데 그 적임지가 바로 용산공원이라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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