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초빙교수

작지만 큰 성공이었다. 낙엽이 하늬바람에 휘날리는 스산한 늦가을 밤. 조명타워가 충남대 운동장을 대낮같이 환하게 밝혔다. 기온이 뚝 떨어진 쌀쌀한 밤날씨에 운동장은 좀 썰렁해 보였다. 천연 잔디와 400m 우레탄 트랙, 그리고 스탠드가 운동장 주위로 빙 둘러 놓여 있었다. 하루 훈련일과가 끝난 듯 선수들은 보이지 않았다. 야간 조명시설이 설치된 것이 특이했을 뿐 여느 운동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운동장 본부석 하단의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자 새로운 모습이 펼쳐졌다. 특히나 실내에서 훈훈한 열기가 느껴졌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일반 운동장의 경우 본부석 하단은 각종 시설물을 보관하는 창고 등으로 사용하는 게 보통인데 충남대는 색다르게 사용하고 있었다. 운동과 공부를 함께 할 수 있는 모든 시설이 갖춰져 있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작은 기숙학교’였다. 안에는 웨이트트레이닝실 남녀독서실 세미나실 휴게실 식당 샤워실 수면실 등 선수들을 위한 다양한 시설이 있었다. 충남대 육상 선수들이 먹고 자며 운동하고 공부할 수 있도록 전반적인 시설이 마련됐다. 충남대 체육교육학과 이정흔 교수가 서울에서 내려온 김에 한 번 꼭 보고 가라고 적극 권유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지난 주말 대전 유성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체육인재육성재단 학교체육 방송콘텐츠 사업 2차 자문회의가 끝난 뒤 필자를 비롯한 정동구 재단 이사장(전 한국체대 학장) 등 일행 등은 충남대 육상부의 운영상황을 직접 보고 모두 깜짝 놀랐다. 운동과 학습을 병행할 수 있는 뛰어난 환경을 잘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공부도 금메달, 운동도 금메달’이라는 구호와 함께 육상부 출입구에는 후배들이 본받을 ‘자랑스런 얼굴’들이 현황판에 붙어 있었다. 통과가 어려워 교사 지망생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 되는 임용고시 합격자 20여 명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모두 충남대 육상부를 거친 선수출신들이었다. 세미나실과 연구실은 많은 전공서적과 학술논문집 등이 비치돼 웬만한 대학 연구실 수준 못지않았다. 샤워실은 선수들의 피로를 쉬 풀어주기 위해 아이디어를 살린 특이시설이 마련되었으며 식당도 50여 명이 일시에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규모를 갖추었다. 일행 등은 웨이트트레이닝실부터 수면실까지 구석구석을 살펴보면서 예산 지원도 많이 받지 못하는 지방대에서 이 정도의 시설을 갖추고 운영한다는 사실이 잘 믿어지지 않았다.

“빠듯한 학교 예산 이외에 동문 선후배, 지역사회 등의 후원 등으로 운영하고 있다. 공부하는 학생 운동 선수를 배출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는 게 이정흔 교수의 설명이다.

충남대 육상부 선수들은 운동에 주력하면서 부족한 공부를 독서실에서 불철주야로 연마하고 있으며 학습이 부진할 경우 멘토를 지정, 선배 학생들이 개별 지도를 하고 있다. 논술수업과 시청각 수업 등 다양한 보충학습 프로그램도 시행하고 있다.

충남대 육상부는 이미 전국체전 등에서 최다 메달을 획득하며 한국 육상의 메카로 화려한 명성을 올렸다. 그런데 학업에서도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은 운동선수들의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마련 중인 체육 당국자들에게 좋은 귀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교육과학기술부, 문화체육관광부 등은 최근 주말리그제, 홈앤드 어웨이 경기방식 등을 통해 학생선수들이 정상적인 수업을 받으며 운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정책 및 행정 개편과 지원방안 등을 내놓고 있다. 운동과 학업 등에서 작지만 큰 성공을 거둔 충남대 육상부에서 보듯 운동선수의 학습권 보장이 학원 스포츠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학교 학생 교수 지도자 학부모 등이 유기적으로 연계, 협력해야 한다.

정부에서 아무리 예산과 행정지원 등을 통해 선도를 해나가더라도 정작 당사자인 학생 운동선수들이 이에 호응을 잘 하지 못한다면 실효를 거두기가 힘들다.

성공적인 충남대 육상부를 보면서 ‘한국 엘리트 스포츠와 학원 스포츠가 잘만 하면 균형있게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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