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량 작가

21세기의 젊은이들은 IT 문명의 혜택자들이긴 하지만 21세기 신자유주의 시장이 유발한 경제위기의 희생자들이기도 하다.

한국이든 어디든, 내가 20대를 보낸 90년대보다 사회적 분위기는 훨씬 풍족한 양상을 띠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88만원 세대’가 등장하였고, 고학력 출신들의 비정규직은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20대 취업난은 90년대 중반부터 사회문제로 부각된 이후 악화의 일로를 걷고 있는 편이다. 필자가 파리로 유학 왔을 때는 90년대 중반이었다.

유학생활 1년 반 만에 어렵사리 프랑스 영화의 대부분이 거쳐 가는 영화제작소 GTC에 인턴사원으로 채용되었을 때, 직원들은 나를 곱지 않은 눈으로 흘겨보았다. ‘아시아인들이 우리 아이들 자리를 차지한다’고 수군거렸으며 내가 업무사항에 관하여 질문을 던질 때마다 ‘염탐하러 왔느냐’며 대응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 잡기 시작한 90년대 중반 프랑스의 젊은이들은 이미 비정규직과 인턴사원으로 20대를 보내고 있었고 해마다 그러한 층이 두터워지자 그네들은 소소하게나마 농성과 시위를 지속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성장한 프랑스 고등학생들의 불안은 이미 2006년 CPE 임시고용계약직 반대 시위에서 폭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0년 10월 연금개혁안 반대시위에서 다시 등장한 고등학생들은 이러한 지속된 불안을 호소하기 위함이었다.

프랑스의 25세 여성 마리옹 베르제롱(Marion Bergeron)은 183일 동안 국영 취업소개소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일상적 야만으로 가득찬 183일: 183jours dans la barbarie ordinaire’이라는 책을 최근에 출간했다. 2009년, 프랑스 국영 취업소개 사무실인 뽈 앙쁠루와(Pôle Emplois: 직업축)에서 취업난을 해결하고자 임시고용직CDD(Contra à Durée Déterminée)로 채용한 1840명 중의 한 명이 마리옹이었다. 따라서 그는 취업난 해결사로 고용된 셈이다.

그의 저서에서 ‘우리는 어떤 교육도 받지 않은 채 첫날부터 취업 소개소 카운터를 맡았다’고 이야기하며 ‘소개소를 찾아온 사람들은 대부분 프랑스어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민자들이거나 극빈자들이어서 그네들의 태도는 대부분 공격적이기 짝이 없었다’라고 언급한다. 취업난으로 고통받은 하층민들의 불만은 쉽게 광기로 발전했으며 마리옹이 취업 소개소에서 보내는 업무의 일상은 언어폭력은 기본이고 물리적 폭력의 위협에 시달리는 183일로 채워졌다고 고백한다.

저자 마리옹은 국영 취업 소개소의 어처구니없이 복잡한 행정과정, 비효율적인 운영방침이 취업난에 시달리는 하층민들의 분노와 광기를 쉽사리 불러일으켰던 원인으로 분석하고 있다. 마리옹은 국영 취업 소개소에서 183일 동안 근무하면서 겪은 스트레스로 인해 직업병이 생겼으며 몸무게가 5kg이나 줄어들었고 골초 흡연자가 되었으며, 그 이후 다른 직업을 찾는 동기를 2년 동안 상실한 채 칩거했다고 그의 저서에서 쓰고 있다. 마리옹은 책을 쓰면서 자신의 존재적 위기를 극복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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