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얏꽃

신경희

덕수궁 석조전
문양으로 깊이 새겨진 대한제국의 꽃

황제의 나라
대한제국에서

피다가 만 꽃

덕혜옹주를 닮았다.

 

[시평]

덕수궁은 슬픔과 아픔이 많이 깃든 궁궐이다. 덕수궁은 처음 월산대군의 집터였던 것을 임진왜란 이후, 피난에서 돌아온 선조가 임시로 거처하며 사용돼 정릉동 행궁으로 불리다가, 광해군 때에 경운궁으로 개칭이 됐다. 

19세기 침략을 앞세운 열강(列强)에 의해 어려움을 겪던 시대, 민비(閔妃)가 시해되는 비극적 사건이 일어났고, 이로 인해 고종이 러시아 공관으로 몸을 피해 간 사건인 아관파천(俄館播遷), 그리고 러시아공사관에서 고종이 이곳으로 거처를 옮겼고, 또 헤이그 밀사 사건으로 인해 강제로 퇴위가 된 고종이 1907년 순종에게 황제 자리를 양위하고 머물던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러한 고종의 장수를 빈다는 의미에서 덕수궁(德壽宮)이라 이름을 바꾸었다. 이렇듯 덕수궁은 구한말 정치적 혼란의 주무대가 됐던 슬픔과 아픔의 장소이다.

그러한 덕수궁 석조전에 대한제국의 꽃 오얏꽃이 새겨져 있다. 조선조의 임금이 이씨(李氏)이기 때문에, 이(李)가 다름 아닌 오얏꽃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오얏꽃이 대한제국의 꽃이 된 것 아니겠는가. 여리고 흰빛으로 봄이면 피어나는 오얏꽃, 아니 자두꽃. 그 꽃 마냥 슬프게 기우는 대한제국의 옹주로 태어나, 낯선 땅, 낯선 남자 대마도(對馬島) 도주(島主)에게 시집을 가서는, 마침내 비극적으로 살아가야 했던 덕혜옹주, 피다만 오얏꽃 같은 대한제국 옹주의 아픈 모습이 함께 겹쳐져 보이는 꽃, 오얏꽃.

오늘 우리나라는 어느 정도의 부강한 나라가 됐지만, 그래도 지난 아픈 역사가 새겨진 덕수궁을 거닐며, 그 시절의 아픔을 오늘의 교훈으로 삼는 것 또한 중요하리라 생각이 된다. 덕수궁 석조전 한 모퉁이에 새겨진 오얏꽃을 바라보며, 100년 전 우리에게 있었던 아픔과 슬픔을 오늘 다시금 생각해 본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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