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김성완 기자] 굴욕과 치욕의 역사를 품은 남한산성은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에 있는 산으로 사적 제57호로 지정돼 있다. 성벽너머로 바라본 풍경은 너무나 평온했다. ⓒ천지일보 2019.1.12
[천지일보=김성완 기자] 굴욕과 치욕의 역사를 품은 남한산성은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에 있는 산으로 사적 제57호로 지정돼 있다. 성벽너머로 바라본 풍경은 너무나 평온했다. ⓒ천지일보 2019.1.12

성남·광주 등 인근 주민의 휴식처

동문, 주교통로로 가장 사용 많아

적 관측 어렵게 만든 암문 16개

서문, 광나루 등에서 가장 가까워

수어장대, 4개의 장대 중 유일해

[천지일보=김성완 기자] ‘견뎌 후일을 도모할 것인가, 싸워 죽음을 택할 것인가.’

같은 충심, 다른 신념으로 맞선 두 신하를 앞에 두고 적들에 포위돼 남한산성에 고립된 인조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성벽너머로 바라본 풍경은 평온했다. 그 시절 치열했던 함성은 끝없이 이어지는 산새에 파묻혀 버린듯 했다.

남한산성. 역사의 한 자락을 더듬어 보고 싶다는 거창한 표정을 짓고, 올겨울 가장 추웠던 12월 어느날 남한산성을 찾았다. 남한산성은 성남·광주 주민을 비롯한 인근 지역 시민의 휴식처이자 등산로로 사랑을 받는 곳이다. 특히 이날은 추운 날씨였음에도 산행에 나선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어 색달랐다. 등산로는 다양했으나 성문을 중심으로 성벽을 따라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한산성의 성문은 산세와 지형의 영향으로 한쪽으로 치우친 형상이다. 밑에 홍예문(아치형의 문)을 두고 위에는 문루를 세웠다. 규모는 남문이 가장 크고 북문, 동문, 서문 순이다.

동문을 앞에 두고 배낭을 메고 가는 한 등산객과 마주쳤다. 같은 방향이란다. 그가 가는 길을 따라갈 작정이다. 동문 쪽으로 들어섰다.

동문은 광주지역과 연결되는 성문으로 중부내륙지방과 연결되는 주요 교통로여서 가장 사용빈도가 높았다. 동문은 좌익문(左翼門)이라고도 하는데, 행궁을 중심으로 국왕이 남쪽을 바라보며 국정을 살피므로 동문이 좌측이 되기 때문이다. 이 동문은 낮은 지대에 지어졌기 때문에 계단을 쌓고 그 위에 성문을 축조해 우마차의 통행이 불가능했다. 한동안 바라보니 과연 아무나 들여보내지 않겠다는 듯 화강석 석재에서 뿜어 나오는 위압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남한산성 성벽 ⓒ천지일보 2019.1.12
남한산성 성벽 ⓒ천지일보 2019.1.12

동문을 뒤로하고 성벽을 따라 나 있는 길로 진입해 10분가량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파른 비탈길이 이어졌고 숨이 턱 밑까지 차올랐다. 산 자체의 경사가 절대 완만하지 않았다. ‘시작부터 이렇게 힘들어서 과연 산성을 다 둘러 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겨우겨우 산 중턱에 다다르니 앞서가던 등산객은 이미 보이질 않는다. 성벽을 붙잡았다. 차가운 냉기가 고스란히 손을 타고 올라왔다. 성벽을 이루고 있는 돌들 너머에 서려 있는 아픈 기억들. 성벽에 어깨를 맞대고 기댔다. 힘겹고 처절했던 우리네 역사를 보듬고 잠시 멍해졌다.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47일간의 전쟁. 병자호란!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치욕을 견디고 청과 화친하자는 주화파 이조판서 최명길, 청에 끝까지 맞서 싸워 대의를 지키고자 하는 척화파 예조판서 김상헌. 이들의 날카로운 논쟁과 갈등이 기억의 저편에서 나아온다. 또한 이들의 대립은 380여년이 흐른 현시대에도 공감할 수 있는 깊은 울림과 메시지를 주는 듯하다.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잠시 멈췄던 발걸음을 일으켜 세웠다. 겨울바람에 기댄 추위도 시나브로 사라져 버렸다. 중턱을 지나서부터 산성길은 작은 굴곡을 이루고 있어 어렵지 않았다. 또한 성벽은 S자 형태의 곡선을 이루고 있어 나름의 운치도 있었다.

 

적이 관측하기 어려운 곳에 만들어진 암문 ⓒ천지일보 2019.1.12
적이 관측하기 어려운 곳에 만들어진 암문 ⓒ천지일보 2019.1.12

얼마나 걸었을까? 걷다 보니 작은 성문이 눈에 띄었다. 가까이 가니 암문이라고 표시돼있다.

암문은 적이 관측하기 어려운 곳에 만든 성루가 없는 성문으로, 은밀하게 식량과 무기를 운반하거나 원군이나 척후병이 출입하는 용도로 사용됐다. 그래서 크기가 작고 장식이 없는 것이 특징이며, 안쪽에 쌓은 옹벽이나 흙을 유사시에 무너뜨려서 암문을 폐쇄할 수 있게 만들었다. 남한산성엔 이런 암문이 열여섯개가 있다. 걸어 들어가 보니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야 할 정도로 통로가 좁았다.

암문을 둘러보고는 가는 길을 재촉했다. 성문을 다 돌아보려면 말이다. 다만 좋았던 것은 성문 진입부와는 달리 길이 완만하게 이어져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는 점이다. 쉼 없이 이어진 산성길을 따라 그 너머의 풍광을 구경하면서 북문을 지나쳤다. 그리고는 한참을 걸어 서문 입구에 도착했다.

서문은 우익문(右翼門)으로도 불리는데 1637년 1월 30일 인조가 세자와 함께 청나라 진영으로 들어가 항복할 때 이 문을 통과했다고 한다. 서문은 가파른 경사면으로 물자 이송은 힘들지만, 서울 광나루와 송파나루 방면에서 산성으로 진입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서문 밖 산성길을 따라 몇 걸음을 가니 성벽 너머로 시원한 조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위례신도시, 잠실 롯데타워, 송파 몽촌토성이 발아래로 내려 보이고 고개를 들면 남산 서울타워까지 한눈에 볼 수 있어 시원함을 안겨줬다. 쌀쌀한 날씨였지만 맑아서 다행이었다.

 

수어청의 장관(將官)들이군사를 지휘하던 수어장대.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다. ⓒ천지일보 2019.1.12
수어청의 장관(將官)들이군사를 지휘하던 수어장대.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다. ⓒ천지일보 2019.1.12

 

서문을 지나면 경사가 완만한 내리막길이 계속 이어졌다. 10분을 걸었을까? 수어장대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수어장대는 수어청의 장관들이 군사를 지휘하던 곳으로, 1624년(인조 2) 남한산성을 축조할 때 지은 4개의 장대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있는 중요한 건물이니 살펴볼 만 하다. 수어장대는 병자호란 때 인조가 친히 수성군을 지휘하면서 청 태종의 12만 대군과 대치하며 45일간 항전으로 버티던 곳이다. 가까이 가서 보니 그 규모도 상당했다.

수어장대를 빠져나와 숲길을 따라 왼쪽을 보니 쭉 뻗은 소나무들 사이로 인조가 그토록 고뇌했던 장소, 남한 행궁이 자리하고 있었다. 조선 시대의 행궁은 유사시 왕이 피난할 수 있도록 준비된 예비 궁궐이었다. 청의 군사들을 피해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인조. 조선을 살리고 백성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남한산성에서 내려와 청 태종에게 향했던 인조의 발걸음은 얼마나 무거웠을까. 매서운 추위에 잠시 잊었던 역사가 되살아났다. 다 타버린 행궁, 다시 복원된 행궁. 나뭇가지마저 다 떨어져 을씨년스러운 계절이었으나 산성의 오래된 푸른 소나무들이 행궁과 어우러져 안정감을 주고 있었다.

이번에 선택한 등산로는 동문에서 북문, 서문을 지나 남문 그리고 다시 동문으로 이어지는 순환코스로 구성돼 있다.

남문에 도달하니 끊임없이 불어오는 칼바람에 코끝이 아려왔다. 문득 엉뚱하게도 보이지 않는 바람을 잡고 싶어졌다. 바람은 정말 매웠다. 발을 동동거리면서 시작했던 동문을 향해 걸어 내려갔다. 여전한 추위에 떨기도 했지만, 기분 좋게 해주는 맑은 공기를 다 마셔 버리겠다는 양 최대한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소나무들이 촘촘히 박혀 있다. 눈이라도 내리면 온통 눈꽃나무로 하얀 세상이 되겠다.

남한산성길은 동문 진입부를 제외하면 경사가 완만해 누구나 걸어볼 만하다. 사실 ‘이건 산도 아니고 산책로도 아니구만’이라는 속엣말이 절로 나왔다. 산이라고 부르기에는 포장도로가 많았고 그렇다고 산책로라 부르기에는 높이와 넓이가 상당해서다.

그래서 좋았다. 잠시 지쳐버린 일상에서 벗어나 보자. 나아가 어렵고 힘들었던 백성의 삶이 혼재돼있는, 또한 역사의 숨결이 살아있는 이 길을 호흡해 보자.

한편 남한산성은 청량산을 중심으로 동쪽의 남한산, 남쪽의 검단산 사이에 형성된 작은 분지를 둘레 8km의 석축으로 쌓은 조선 시대의 성이다. 가파른 산 자체의 경사가 성벽과 결합해 단단한 자연 방어선을 이루는 관계로 굉장히 공략하기 어려운 천혜의 전략적 요충지다.

남한산성은 1963년 사적 제57호로 지정됐으며, 2014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