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장순하(1928~  )

 

 

산으로 난 오솔길
간밤에 내린 첫눈

노루도 밟지 않은
새로 펼친 화선지

붓 한 점 댈 곳 없어라
가슴 속의 네 모습

 

[시평]

겨울이 깊어가고 있다. 첫눈이 내린 지도 이제 제법 됐다. 영하 10도를 전후하는 날씨가 계속되는 겨울의 한파 속에서 잎 떨어진 나무며, 시들어 풀죽은 듯 널브러진 풀들 힘들게 겨울을 견디고 있다. 겨울이 시작되는 시간, 사람들은 은연중에 언제 첫눈이 내릴 것인가 마음속으로 기다린다. 여느 눈을 기다린다기보다는 ‘첫눈’을 기다린다. 올해에 가장 먼저 내리는 그 눈, ‘첫눈’을.

우리는 이 첫눈을 서설(瑞雪)이라고도 한다. 상서로운 조짐을 지니고 내리는 눈이라는 이름의 그 서설. 왠지 이렇듯 처음에 오는 것은 우리들로 하여금 기분 좋은 그런 기대를 하게 한다. 첫사랑, 첫만남, 첫장, 첫모임. 이렇듯 ‘첫’이라는 접두어가 붙는 말은 왠지 우리를 설레게 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처음이기 때문에, 그 처음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간밤에 내린 첫눈은 아름답고 앙증맞은 노루의 그 발마저도 밟지 않았을 듯한, 새로 펼친 화선지와 같이 순수하고 또 곱게 우리들 앞에 펼쳐져 있다. 그래서 붓 한 점 댈 곳 없는, 가슴 속 어딘가에 간직돼 있는 그 첫사랑의 네 모습과도 같은 것 아니겠는가. ‘첫눈’이 내린 아침, 그 아침을 맞이하는 그런 마음, 우리들 마음속 늘 간직할 수 있다면, 그 ‘첫’이라는 접두사와 함께, 우리들 더 없이 늘 행복해질 수 있으리라.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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