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보통 사고가 날 때마다 단골 방문자가 있다. 바로 지자체장과 정치인이다. 사고가 난 뒤 무엇을 했는지 묻는 문화가 생긴 뒤로 마치 알리바이라도 대려는 듯이 서둘러 현장을 방문한다. 요즘은 누가 먼저 방문 했나 경쟁하는 듯한 모습도 눈에 띈다. 방문해서는 대개는 의례적인 말을 한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말들을 남기고 현장을 벗어난다. 그러려면 안 오는 게 낫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이다.

사고는 쉼 없이 계속되고 있지만 최근 두 달 사이에 큰 사고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사고가 시야에서 사라지는가 싶으면 또 사고가 터진다. 사고가 터질 때마다 시민들은 소스라치게 놀란다. 스스로에게 독백처럼 묻는다. 오늘 그리고 내일 나는 안전할 수 있을까. 앞으로 내 가족은 그리고 내 이웃은 사고 당하지 않고 ‘안녕히’ 살 수 있을까.

고시원에서 화재가 나서 숨 한번 쉬어보지 못하고 죽어가는 모습이나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청년노동자가 처참하게 죽어가는 모습은 어떻게 보아야 하나? 필연적으로 날 수밖에 없는 사고가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잘못해서 난 인재다. 거듭된 강제철거로 죽음에 내몰린 서울 아현동 박준경씨나 펜션에서 자신도 모르게 죽어간 고등학생들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는가. 사회가 미쳐 돌아가지 않았다면 피할 수 있었던 비극이다. 국가가 기능 마비가 된 나라가 아니라면 일어날 수 없었던 참변이다.

강릉 펜션 사고는 왜 날 수밖에 없었는가? 펜션이 안전사각지대라는 말은 오래 전부터 나왔다. 하지만 대응은 없었거나 땜질식 처방에 머물렀다. 펜션에 불이 났다 하면 불난 원인에만 관심을 보이고 다른 안전 문제는 관심이 없다. 우리 사회는 그때 그때 땜질식 처방에 익숙해 있다. 사고와 관련된 원인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기 일쑤고 파악했더라도 고치는 시늉만하고 끝내는 경우가 많다.

일산화탄소 누출경보기가 있었다면 위험을 감지하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다. 지난 9월 문광부가 야영시설에 일산화탄소 경보기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률 안을 입법예고 하면서도 펜션 등 숙박시설엔 눈감았다. 보이는 것만 보는 행정의 표본이라 할까. 국가적 차원에서 안전에 관한 종합대책이 나오지 않아 발생하는 결과다.

강릉역 KTX 탈선 사고는 어떤가?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없도록 만들어 놓고 사고가 나니까 날씨 탓을 하거나 남 탓하기 바빴다.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건 무엇을 말하는가. 경강선을 놓을 때 평창올림픽에만 관심을 갖고 열차의 안전성 확보나 시민의 안전, 사고의 예방에는 소홀했다.

예산절감을 이유로 KTX 경강선 일부 구간엔 단선 철도를 만들었다. 이번에 난 사고는 바로 그 단선 노선에서 났다. 이명박 정권 때부터 공기업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전기, 시설, 정비 등 기술 분야를 외주화, 하청화 하고 정비 인력을 대폭 줄였다. 고용이 안정되고 인력이 더 많았을 때와 비교할 때 정비하는 힘이 크게 떨어졌다.

모든 분야의 위험을 국가가 어떻게 다 책임지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국가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고 모든 사안에 국가가 개입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런 생각은 옳지 않다. 국가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국가는 사회 구성들의 생명과 안전 확보를 위해서라면 필요한 일은 무엇이든 해야 한다. 국민의 안전에 무한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가 바로 국가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음으로써 국민이 안전하지 않게 될 경우 국가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의 안전에 대한 열망으로 탄생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세월호 이후 국민들이 안전에 얼마나 ‘민감’해졌는가. 문재인 정부는 국민의 안전에 대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 터지는 사고를 보고 국민들은 무엇이 박근혜 정부와 다르냐고 묻고 있다.

지금이라도 안전에 대한 특단의 종합대책을 내고 국민이 함께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국민은 계속 희생될 것이고 문재인 정부는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