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고시원 참사가 발생한 지 한 달이 넘었다. 7명이 목숨을 잃고 11명이 부상을 당했다. 목숨 잃은 사람 가운데는 일본인도 한명 있다. 사상자 명단에는 없지만 평생 치유해도 모자랄 만큼 긴 세월 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회는 한없이 먼 곳에 있는 까닭에 오로지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고통이다.

고시원 참사는 사고 당일과 이후 일주일 동안만 관심을 받다가 사그라들었다. 한국사회가 주거권과 생존권을 지켜주지 못하는 사회라는 것과 한국 정부와 국회가 주거인권 유린을 방치함은 물론 주거권 유린을 조장하는 존재라는 것을 드러낸 사건이 고시원 참사다. 언론은 물론 정치권, 정부와 지자체가 단 이레만 관심을 갖고 이후부터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평온한’ 상태로 되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한국 사회에 희망이 있는가 묻게 된다.

서울시 당국이 보인 반응은 참으로 유감이다. 자신들이 관할하는 자치구에서 터진 사건인데 강 건너 불난 집 쳐다보듯 하고 있다. 화재가 난 다음 날 박원순 시장이 현장을 왔다 가긴 했다. 누구보다 먼저 오긴 했는데 그가 말한 메시지는 너무나 가벼웠다. “사고원인을 철저히 밝히고, 사망자 유가족과 협의해 사후 수습에 철저히 임해야 한다” “대피소 설치 등으로 건물 이용자들에게 행정 편의를 철저히 지원하겠다”고 말한 게 전부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다.

진정한 목민관이라면 사과부터 해야 했다. “저의 잘못되고 부족한 정치 때문에 목숨을 잃게 된 분들의 영혼 앞에 몸 둘 바를 모르겠고 유가족에게 한없이 죄송합니다. 부상당한 분들에게 너무나 죄송합니다. 눈에 띄는 부상을 당하지는 않았을지라도 화마 속을 뚫고 간신히 목숨을 건진 모든 분들께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말해야 했다.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방안을 내어 놓고 서울시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당장하고 서울시 차원을 넘는 법률, 제도적인 문제가 있다면 시민들과 함께 사회적 공론화를 했어야 했다.

사과는 잘못을 인정하면 쉽다. “고시원 화재는 내 탓이 아니고 오랫동안 쌓여온 문제다. 왜 내가 책임져야 하나?” 이렇게 생각한다면 사과할 이유도 없고 마음도 안 생길 것이다. 물론 고시원 참사가 서울시만의 책임은 아니다. 하지만 서울시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사람이 창문도 없는 두 평이 채 안되는 공간에서 불이 나서 죽어가고 시민이 재건축 단지에서 강제로 내쫓겨 거리를 헤매다가 목숨을 끊는 모습을 보았다면 목민관으로서 모든 걸 걸고 해결에 나서야 한다. 완전 해결은 못하더라도 해결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는 모습은 보여야 한다.

종로 고시원에서도 아현동 재건축 구역에서도 주거 문제 때문에 목숨이 스러졌다. 그렇다면 주거문제 해결에 사활을 걸어야 하지 않겠는가! 서울시는 과연 그 같은 사명을 다하고 있는가? 그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기는 한 걸까?

유감스럽게도 서울지역 자치구 6곳(강북구, 강서구, 도봉구, 성북구, 양천구, 중랑구)은 저소득층에게 공급될 수 있는 매입임대주택 확보를 자제해 달라고 SH공사에 요구했다. SH는 지난 10월 자치구의 요구를 수용해서 ‘매입자제지역’으로 설정했다. 서울시와 SH공사는 주거권에 역행하는 행보를 한 것이다.

지자체는 민원이 올라왔다, 계층 간에 위화감이 형성된다는 등의 이유를 댔다. 이런 저런 이유를 대고 “왜 우리 자치구에 매입임대주택을 더 많이 사들이느냐”고 항의성 발언을 하는데 마음속에 깔려 있는 의도는 가난한 사람들이 이웃이 되는 걸 거부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서울시와 SH공사의 태도이다. 자치구가 요구에 굴복했다. 절대 해서는 안되는 행동이었다.

아현동 철거민 박준경씨는 숨이 붙어있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어머니께는 임대아파트를 드려 달라”고 호소했다. 박원순 시장과 서울시는 집을 찾는 절박한 시민들에게 집을 마련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6개 자치구에서는 저소득층이 이용할 매입임대주택을 확보하지 않겠다는 서울시의 방침을 철회하는 조치부터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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