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용 시민주권 홍보기획위원장

역시 한시대를 풍미했던 ‘거인’은 뭔가 남다른 데가 있다. 한동안 언론의 포커스에서 비켜나 있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최근 다시 화제에 올랐다. 그는 지난 11일 자신의 미납 추징금 1672억여 원 가운데 오랜만에 300만 원을 냈다. 그리고 그 납부액의 출처가 대구지역에서 한 강연료라는데 그 강연행사를 중심으로 한 동창회 행사의 면모가 너무도 희극적이라는 점도 구설수에 올랐다.

이미 알려져 있다시피 전 씨는 1996년 뇌물수수와 군 형법상 반란 등의 혐의로 처벌받았다. 그는 재임 당시 기업인들로부터 9500여억 원의 비자금을 거둬들인 것으로 확인됐고 검찰은 전체 비자금 중 43개 업체로부터 받은 2295억 5000만 원을 뇌물로 인정해 기소했다.

대법원은 1997년 그에게 무기징역과 함께 2205억 원의 추징금을 확정했다. 지금부터 30년 전에 대통령이라는 이름으로 1조 원 가까이를 기업인들로부터 받아 챙길 수 있었다는 사실이 요즘 시각으로는 도무지 믿기지 않을 것이다.

당시의 화폐가치를 감안하면 현재 돈으로는 몇조 원을 상회하는 천문학적 액수이다. 부인이 불과 100만 달러를 박연차로부터 (자신 몰래) 받았다는 점을 괴로워하다 목숨을 던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례에 비추어보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전 씨의 통 큰 스토리는 계속 이어진다. 그는 후계자인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자마자 1997년 12월 사면됐다. 하지만 사면이 됐더라도 추징금은 내야 하는데 1672억 원은 아직 미납상태다. 검찰은 1997년부터 최근까지 모두 12차례에 걸쳐 전 씨의 재산 532억 원을 찾아냈다.

그러나 전 씨의 재산 은닉술이 워낙 뛰어난 탓인지, 혹은 검찰의 추징 의지가 미약해서인지 현재 추징 집행률은 불과 24%에 지나지 않는다. 검찰은 그간 언론 등 여론이 문제를 제기할 때마다 찔끔찔끔 추징금을 물려왔다.

검찰은 2008년 8월에는 은행채권추심 방식으로 전 씨 명의의 통장과 채권 등으로 4만 7천 원을 추징했다. 이 과정에서 검찰이 2003년 전 씨의 재산을 공개해달라는 재산명시 신청을 법원에 냈는데 당시 전 씨는 “예금과 채권을 합쳐 29만 1000원이 전 재산”이라며 법원에 재산목록을 제출하기도 했다.

이처럼 추징금 납부에 불성실하던 그가 이번에 300만 원을 납부한 이유는 뭘까? 현행법에 따르면 추징금은 강제집행절차 종료일로부터 3년 동안 추징실적이 없으면 자동 소멸된다. 이 때문에 검찰 등에서는 추징금 시효가 만료되면 추징 못 했다는 여론의 비난이 거세지기 때문에 압류 등의 형식으로 추징을 하게 된다.

그러나 전 씨 명의의 부동산 등이 없기 때문에 검찰이 부인 명의로 된 서울 연희동 자택에 이른바 ‘빨간 딱지’를 붙이는 압류를 실시할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추징 시효가 완성되기 전에 검찰이 압류 등의 방식으로 미납 추징금을 징수하려 들 것을 우려해 전 씨가 자진 납부를 함으로써 시효를 3년 연장하려 했을 것이다. 그의 통 큰 풍모에 견주면 이해가 가지 않는 꼼수라 할 것이다.

또 하나 모 방송의 보도로 알려졌지만 전 씨의 모교 동창회 행사도 꼴불견이다. 대통령까지 지낸 선배를 모시고 성대한 동창회를 치르는 것을 시비 걸 마음은 없다. 하지만 봉황무늬의 호화 연단에 앉은 전 씨를 향해 후배들이 운동장에서 넙죽 절을 하는 모습은 코미디를 방불케 한다. 더구나 덕담 몇 마디를 한 전 씨에게 특강료랍시고 300만 원(실제로 얼마를 줬는지는 모르지만)을 건네준 동창회나, 이를 소득입네 하고 추징금으로 낸 전 씨 모두 한심스럽긴 마찬가지다.

이쯤에서 전 씨의 장남 재국 씨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재국 씨는 1990년부터 도서, 매거진 출판, 통신판매 서비스, 광고, 전시이벤트 등을 하는 ‘시공사’를 운영 중이다. 시공사는 직원 600명에 매출액만도 2000억 원이 넘는 거대 출판기업이다.

재국 씨는 또한 2004년부터 경기도 연천 땅 1만 8000여 평을 매입했는데 시가로만 60억 원이 넘는다고 한다. 전 대통령은 과거 추징금에 대해 “통치자금으로 다 써서 현재 남은 게 없다. 원하면 뒤져서 찾아가라”고 한 적이 있다. 그가 현금 29만 원으로 겨우 연명하고, 지방에까지 가서 받은 강연료로 겨우 추징금 300만 원을 납부한다는데 그의 자녀가 사업으로 욱일승천하는 게 과연 공정사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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