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 의원 원장

 

지난 10월 18일 대구시 서모(41, 여) 씨의 빌라 옥상에서 서 씨가 빨래건조대에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아들 김모(15) 군이 발견해서 경찰에 신고했다.

김 군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고 친구들과 논다고 엄마랑 다툰 뒤 2시간이 지났는데도 엄마가 보이지 않아 찾아봤더니 옥상에서 목을 매 있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보다 전인 10월 7일 행복전도사로 활발하게 방송·강연·집필 활동을 해 왔던 최윤희 씨가 자살을 했다. 고인은 유서에서 700가지 통증으로 인한 신체적 고통과 병 때문에 견디기 힘들었다고 밝혔다. 그녀는 스스로 극심한 ‘통증’을 자살 선택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한편 경찰은 앞의 평범한 가정주부의 자살 원인을 ‘홧김’으로 인한 충동적 행동으로 보고 수사에 착수했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신체적 고통이 너무 심하면 죽고 싶을 수 있을 거야.’ ‘홧김이나 술기운에 충동적으로 자살 시도를 할 수 있겠지.’

그러나 정신과 전문의인 필자의 견해는 조금 다르다. 자살의 직접적인 원인으로는 반드시 우울증을 의심해야 한다고 본다. 혹여 독자는 ‘당신이 정신과 전문의니까 다 그렇게 보는 것 아닙니까?’라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렇다. 정신과 의사이기 때문에 인간의 정신적인 문제·질병·건강을 살펴보고, 바로 그러한 정신적인 문제에서 비롯되는 말과 행동을 늘 눈여겨본다.

지금 이 순간 신체적 고통을 느끼면서 병마와 싸우는 수많은 환자분들과 가족 간 갈등으로 화가 치밀어 오른 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려 보자.

그들이 모두 자살을 선택하게 될까?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자살을 한두 번 생각해 봤을까? 가능성 있는 얘기다. 그러나 일부분의 사람들만 해당한다. 즉 살면서 누구나 다 심신의 고통을 경험하지만, 그 순간 ‘자살’을 떠올리거나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는다. 이것이 정상적인 인간의 행동이다.

자살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어 있고, 또 설사 생각이 들더라도 남아 있는 가족, 여태까지 살아왔던 내 인생의 가치, 스스로 용납이 되지 않는 느낌, 지금의 괴로움을 벗어나고자 하는 용기, 미래에 대한 희망 등의 제어 장치가 작동되어서 감히 행동으로 옮기지는 더욱 못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 그것은 그들이 아프기 때문이다. 기존의 신체적 질병이나 불같은 성격 외에 ‘우울증’이 마음속에서 어느 틈에 자라나 도사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는 ‘자살은 우울증 등의 질병에서 비롯된 인간의 이상 행동’이라고 주장한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매사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해석하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기 때문이다. 또한 우울증에 걸린 뇌는 정신적 즐거움과 평온함을 담당하는 신경전달물질이 고갈되어서 우울, 불안, 의욕 없음, 흥미의 감소, 절망감 등 부정적인 감정을 만들어 낸다.

감정 상태가 이러할진대 생각이 온전할 리 없다.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라는 부정적인 해석과 앞으로 이렇게 살면 의미가 전혀 없다는 부정적인 예측이 그 또는 그녀로 하여금 자살 시도를 하게 만든다.

대개 결정적인 자극이 있다. 환자에게는 의사의 사형 선고나 부정적인 치료적 예후 설명, 청소년에게는 부모님의 심한 잔소리나 꾸지람, 학생에게는 선생님의 심한 모욕이나 체벌, 여성에게는 강간 또는 폭행, 부모님에게는 자녀의 반항이나 불행한 일의 생김, 남성에게는 직장에서의 해고나 사업의 실패, 노인에게는 배우자의 사망 등이다.

고개를 끄덕일 정도의 큰 불행한 사건도 있겠지만, ‘아니, 그 정도 일 가지고서?’라는 객관적으로 사소한 자극도 있다. 여하튼 자극에 반응하는 인간의 반응이 ‘자살’이라는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비정상적인 이상 행동이다.

극단적인 이상 행동을 보이기 전에 그분들에게는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다. 정신과 의사가 돈 벌기 위해서 이러한 주장을 한다고 색안경 끼지 말고 보시기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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