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단풍

김선영(1938~  )

가을 되니 드디어
나무의 마음 드러난다.
그대의 피
초록인 줄 알았는데
나처럼 붉은 피를 가졌구나.

환성으로 터져 나오는
단풍 속 불빛이여
옛 봄날 꽃이 지고 울던 자리에
이제야 활활 불붙어 오르는
사랑의 빛깔이여

온몸을 불사르는
아무도 막을 수 없는 그리움이여.
 

[시평]

나무의 마음은 어떤 색깔일까. 나무의 마음, 그 색깔은 과연 있는 것일까. 그러나 시인은 그 나무의 마음, 그 빛, 색깔이 어떤 색인 줄 안다. 그래서 가을이 되니 비로소 나무의 마음이 드러난다고 노래하고 있다. 나무의 마음이, 나무의 마음을 감싸고 흐르는 피가 초록인 줄 알았는데, ‘나’처럼, ‘우리 사람들’처럼 붉은 색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노래한다.

지난 봄날, 화려하고 아름답게 피어 있던 꽃들이 그만 속절없이 지고 말았고, 그 봄날 꽃이 지고, 꽃이 지는 그 아픔과 서운함으로 울던 그 자리에 파릇파릇 나뭇잎이 돋아나더니, 이제 이 가을을 맞아 비로소 활활 불붙어 사랑의 빛깔로 타오르고 있구나. 온몸을 불사르는, 아무도 막을 수 없는 그리움으로 타오르고 있구나.

이제야 알겠구나. 이 가을 나무들이 온통 불타는 붉음으로 온몸을 불사르고 있는 그 이유를. 지난 봄날 속절없이 떨어져버린 꽃들에의 그 그리움으로, 그 아픔으로 이제야 붉게, 붉게 타오르고 있는 것이로구나. 그리움의 빛깔, 그리움이라는 사랑의 빛깔, 이 가을 나무들은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구나.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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