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서민 물가고통 가중..한은 직무유기"

(서울=연합뉴스) 1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한국은행 국정감사에서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의 3개월 연속 기준금리 동결이 도마 위에 올랐다.

여야 의원들은 한은이 `환율 방어'를 위해 기준금리 동결을 선택함으로써 물가 불안과 가계 빚 증가 문제 등을 외면했다고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특히 김중수 한은 총재가 "우측 깜빡이를 넣으면 우회전한다"고 말하는 등 기준금리 인상 신호를 여러 차례 보내고도 실제 행동에 옮기지 못하면서 금융시장의 혼란과 통화정책에 대한 불신을 가져왔다고 질타했다.


◇"서민에 물가 고통..금리 인상 실기"
한나라당 이혜훈 의원은 "한은은 최근 소비자물가와 수입물가 급등으로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자극받는 상황에서 물가 안정이라는 본연의 임기를 포기하고 환율 방어에 매달리는 바람에 서민들만 물가 상승의 희생양이 되게 했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김 총재가 여러 공식석상에서 인플레이션 압력과 금리 정상화를 시사하면서도 금리를 동결하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여 시장에 충격을 주고 스스로 한은의 독립성을 훼손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4분기 이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를 넘을 것으로 한은이 전망하는 가운데 9월 소비자물가는 3.6% 급등했다. 그러나 금통위는 지난 14일 정례회의에서 주요국 간의 `환율 전쟁'이 국내 경제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우려해 기준금리를 연 2.25%로 묶었다.

채권시장의 예상을 빗나간 이 결정으로 국고채 금리가 사상 최저치로 폭락했고 정기예금 금리는 역대 최저 수준인 연 2%대까지 떨어졌다. 금통위는 8월에는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을 들어, 9월에는 여기에다 부동산 경기 침체를 고려해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한나라당 이한구 의원도 "저금리 정책의 지속으로 물가 불안만 심화하고 있다"며 "저금리 기조는 주택담보대출 등 가계대출을 더 늘어나게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같은 당 나성린 의원은 "금리 인상은 타이밍(시점)이 핵심인데, 최근 통화당국이 원화 절상 기조에 따른 물가 안정 효과에 지나치게 안주해 타이밍을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며 점진적인 기준금리 인상을 촉구했다.

민주당 이강래 의원은 "과잉 유동성이 한국 경제의 최대 암초로 등장해 물가 상승과 부동산 버블 형성 등을 부추기고 있다"며 "기준금리 동결은 한은이 정부에 종속된 결과로, `기획재정부 금리국 또는 남대문출장소'로 전락했다"고 혹평했다.

김 총재는 "환율(하락)을 막겠다고 (기준금리를 동결) 한 것은 아니다"며 "대외 환경이 급박하고 불확실한 상황에서 전반적인 국가 경제의 안정을 위한 것으로, (금리 인상) 실기 여부는 시간을 두고 판단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환율 방어 효과 의문..자본유출입 통제해야"
민주당 김성곤 의원은 기준금리 동결에 대해 "서민을 외면한 한은의 직무유기로, 국민에게 물가 고통을 안길 가능성이 높다"면서 환율 방어 효과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김 의원은 원.달러 환율 하락과 관련, "시장에서는 기본적으로 발권국인 미국의 양적 완화(유동성 공급) 조치에 따른 것으로, 달러가 세계 곳곳에서 넘쳐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란 점을 강조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해도 외국자금의 유입 추세를 막을 수 없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고환율 정책을 쓰면 그 이익은 수출 대기업에 돌아가고 한은이 환율 방어는 물론 물가 상승 억제에도 실패해 통화정책이 무력화되는 처지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이다.

자유선진당 김용구 의원은 "대통령도, 국무총리도, 기획재정부 장관도 하반기 물가 관리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했는데 한은의 통화정책은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환율을 이유로 물가 관리를 포기한 것은 수출 대기업 등 가진 자를 위한 정책 결정"이라고 거들었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은 이번 기준금리 동결에서 자본시장의 완전 개방, 환율 안정성, 독자적인 통화정책 등 세 가지 중에서 어느 하나는 희생될 수밖에 없는 `트릴레마'를 확인했다고 평가했다.

이 의원은 "지속적으로 외환이 유입되고 환율 전쟁이 장기화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금리 동결이 외환시장 변동에 대한 실효성이 있는 대책이 될지 의문"이라며 실효성 있는 해법으로 강력한 자본 유출입 통제를 제시했다.

이강래 의원은 단기성 투기자금의 과도한 국내 유출입을 막기 위해 파생금융상품과 외환 거래 때 세금을 물리는 `토빈세'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총재는 "자본시장과 환율의 변동성은 경제 전체의 안정성을 해치는 큰 문제"라며 "(투기적 목적의 외국인 자금 유입은) 거시 건전성의 틀을 통해 어느 정도 규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통위원 장기 공석 비판.."중립성 제고 필요"
금융통화위원 한 자리가 6개월 가까이 비어 있는 바람에 금통위원 간 상호 견제와 균형을 통한 통화정책의 중립적 수립이 훼손되는 등 금통위가 기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질타도 잇따랐다.

민주당 김성곤 의원은 "항간에는 지난 6월 지방선거 전에는 `낙선자를 위한 자리'라는 얘기가 나돌았고, 최근에는 `G20(주요 20개국) 준비위원회 파견자를 위한 자리'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면서 "이런 식으로 청와대의 낙점을 기다리며 한가하게 자리를 비워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같은 당 전병헌 의원은 "금통위원 6명 중 5명이 사실상 친정부 인사로 독립성 훼손에 대한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고 이용섭 의원은 중립성 제고 방안으로 금통위원 임명 때 국회 동의 또는 인사청문회 제도 도입, 금통위원 임기 장기화, 정부의 금통위 열석발언권 폐지 등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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