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10여년 전 이야기다. 미래에 선생님을 꿈꾸는 고3 학생이 원서 넣을 교육대학교를 알아보는 중인데 성적이 시원찮다면서 삼청교육대는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잠시 멍해졌다. 

 

국가에 의한 잔혹한 인권침해 사건이 삼청교육대 사건인데 고3이 될 때까지 역사적 사실을 마주하는 교육이 이루어지 않았다는 사실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내가 간단히 설명해 주었더니 아직도 삼청교육대가 있는 줄 알고 “휴!”하고 한숨을 내쉬면서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고 말했다.  

 

지금부터 38년 전 뚝섬으로 물놀이 가던 스물두 살 청년 한모군은 영문도 모른 채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다. 구타와 강제노동을 견딜 수 없어 탈출을 시도했지만 결국 잡혔고 계엄 포고령 13호를 위반했다 해서 1년을 징역살이했다. 한씨는 14일 서울중앙지검에 재심을 청구했다. 

 

민주공화국임을 규정한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에 비추어서도 인권적 시각에서도 상식의 눈으로 볼 때도 한씨의 재심청구는 반드시 받아들여져야 하고 무죄로 판결이 나야 마땅하다. 이번 재심 청구를 기점으로 삼청교육대의 진상규명을 위한 재조사가 이루어지고 보상과 명예회복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삼청교육대’는 1980년 8월 불법 쿠데타 기관인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가 사회정화를 하겠다면서 군부대 내에 설치한 기관이다. 전두환 정권은 6만여명을 체포했고 4만 3599명이 군부대 안 수용소로 끌려갔다. 1989년 노태우 정권이 발표한 자료만 보더라도 총을 맞아 죽은 사람을 비롯한 사망자가 52명이다. 수치가 턱없이 축소됐다는 증언도 있다. 삼청교육대인권운동연합의 보고서에 따르면 후유증으로 사망한 사람만 397명이고 정신이상자가 된 사람을 포함한 상해자가 2768명이나 된다. ‘장애’로 판정이 되지 않는 부상자들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이다. 

 

삼청교육대는 수용소군도나 킬링필드에 비유되는 잔혹한 국가폭력 사건이다. 전두환 세력은 사회악을 일소하고 국가기강을 단시일 안에 확립한다는 명분으로 무차별적인 검거 선풍을 일으켰다. 깡패와 불량배를 새 사람으로 개조하겠다는 명분을 내세기도 했다. 정권 장악 시나리오에 따라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범죄소탕과 사회악 제거라는 명분도 얻기 위한 쿠데타 기획이었다.

 

1988년 삼청교육대 피해 보상계획이 발표됐다. 3226명이 피해신청을 했으나 피해보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1989년 전 삼청교육진상규명 전국투쟁위원회 정인수 위원장은 전두환씨와 이희성 계엄사령관 등 국보위 실세들과 최규하 전 대통령을 검찰에 고소했다. 하지만 검찰은 피고소인 조사도 하지 않고 시간만 끌다가 ‘직권남용’ ‘감금치사’ ‘감금치상’ 등의 공소시효가 완성됐다면서 불기소 처분했다. 91년 500명이 집단으로 피해보상 청구소송을 했지만 시효가 끝나 보상을 받을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을 마주해야 했다.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는 삼청교육대 설치가 위법이라면서 보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건 뒤 24년 만인 2004년에 이르러서야 삼청교육대 피해자와 관련한 ‘삼청교육 피해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지만 진상규명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보상액은 미미했다. 명예회복 조치가 전혀 없었고 책임자 처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2007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는 삼청교육대의 설치가 불법이며, 교육과정에서 각종 인권유린이 자행됐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을 제1의 국정과제로 삼았다. 적폐 가운데서도 역사적폐 청산은 한시도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반인권 국가폭력 범죄를 단죄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언제라도 똑같은 범죄를 저지르는 정권이 나타날 수 있다. 잔인한 폭력 앞에 무방비 상태에 놓였던 피해 시민들과 가족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명예를 회복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시급한 과제이다. 

 

정부와 국회는 삼청교육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피해자 보상과 명예회복을 위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전면적인 재조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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