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사가 된 시인

김승하

그는 한때 칼보다 펜이 강하다는
신념을 갖고 열심히 시를 쓴 적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딸에게는
칼보다 강한 이 펜으로 꿈을 심어주는 사람이 되라는
메시지와 함께 만년필을 선물한 적도 있지만
이제는 펜을 믿지 않는다.
그가 다시 펜 대신 칼을 잡았을 때
칼보다 더 강한 것이 밥이라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고 있을 뿐이다.
언젠가 꿈꾸고 가슴속 뜨겁게 타오르던 불꽃들,
이제는 차갑게 식어 냉동된 언어들
양념도 없이 요리하고 있다.
하얗게 얼어붙어 서리 낀 이미지들,
뜨겁게 달아오른 팬 위에 쏟아 붓고 있다.
 

[시평]

그렇다. 세상에 전하는 말 중, 우리를 그래도 위안하는 말은 ‘칼보다 강한 것이 펜이다’라는 그 말씀이다. 세상의 무엇도 베어 쓰러뜨릴 수 있는 무섭고 무서운 칼보다 강한 것이 펜이라니. 우리가 어린 시절 학교를 처음 들어가는 그 시간부터 줄곧 우리의 손에 들려 있던 그 펜이 칼보다 더 강하다니. 그래서 어쩌면 펜이 지배하는 부드러운 세상을 살 거라는 기대를 간혹 갖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의 강한 펜을 만든다는 것은 어느 의미에서 강한 칼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우리라. 칼은 그저 사람을 베어 굴복시켜야 하지만, 어디 펜은 그런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고, 또 그 사람의 마음까지 얻어야 하니, 그 얼마나 어려운 길이며, 얼마나 지난한 일이겠는가. 

그러나 실은 펜보다 더 강한 것은 우리네 삶이리라. 우리의 삶 속에서 매일 같이 먹어야 하는 밥, 아니 밥과 같은 언어가 아니던가. 시인은 밥을 짓듯이, 요리를 하듯이 매일 같이 언어를 요리한다. 차갑게 식어 냉동된 언어를 가슴속 뜨겁게 타오르는 불꽃으로 데워서, 뜨겁게 달아오른 팬 위에 쏟아 붓듯, 벌려야 하는, 언어와의 싸움. 이가 바로 펜이 칼보다 더 강해지는 그 길이 아니던가.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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