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총연합회. ⓒ천지일보 2018.11.12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천지일보 2018.11.12

서울신대 박명수 교수, 미래목회포럼 간담회서 분석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한기총이 더 나아가지 못하고 주저앉은 이유는 대표회장 선출 과정에 보인 도덕성 결여 때문이다. 아울러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를 둘러싼 유연성이 부족하기도 했다. 이단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도 실패했다.”

서울신학대학교 박명수 교수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의 성장과 쇠퇴 과정과 그 이유를 조명했다. 12일 서울 더플라자호텔에서 미래목회포럼(대표 김봉준 목사)이 개최한 ‘한국교회 상생 위한 윈윈 전략’에서 박 교수는 ‘한국교회 복음주의 연합운동의 역사와 방향’을 주제로 이같이 발제했다.

박 교수는 한기총이 한국사회에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한국교회가 성장했다는 점과 선교단체들의 활동, 국가정체성의 확립 등을 배경으로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연합운동 기관이 됐다”고 진단했다. 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해외 기독교의 도움을 받은 반면 한기총은 토착성이 강해 재정적인 측면 등 독자적인 성장을 이뤄냈다고 평가했다.

그렇지만 박 교수는 한기총이 WCC 문제에 대해 지나친 반대로 역효과를 불러 일으켰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한기총과 한국기독교연합(한기연),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으로 분열된 한국개신교 보수진영이 서로 통합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정부를 비롯한 국가기관에 한국교회 보수진영의 입장을 대변할 기구가 일원화 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동성애와 차별금지법 반대를 특히 강조했다.

한편 한기총 홈페이지의 설립 취지문(정관 전문)을 보면, ‘범 교단의 교회 지도자들이 한국교회의 모든 교단을 하나로 묶어 정부나 사회에 대해 한목소리를 내자는 데 합의했다. 1989년 4월 28일 한경직 목사 외 300여명이 서울 영락교회 선교관에서 창립 준비위원회 총회를 가졌다’고 명시했다.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국교회에 주신 사명에 충실하기 위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지지 않으면서 연합과 일치를 이루어 교회 본연의 사명을 다하는 데 일체가 될 것을 다짐했다’고 밝혔다.

이후 같은 해 11월 29일 각 교단과 단체의 파송 대표 연석회의를 개최해 창립총회 장소와 일정을 잡았다. 그리고 12월 28일 서울 강남침례교회에서 창립총회를 개최, 36개 교단과 6개 단체에서 대표 121명이 참여해 한기총이 탄생했다.

하지만 한기총은 탄생 때부터 한쪽으로 이미 기울어져 있었다. 정치적 목적과 떼려야 뗄 수 없었던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당시 정부는 진보 개신교 교단 협의체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를 견제하기 위한 세력이 필요했다.

이에 정부는 1989년 12월 장로교를 중심으로 한 보수 교단 협의체인 한기총을 창설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언론을 통해 공개된 제5공화국 당시 문건이 한기총의 설립에 정치적인 외부 입김이 작용했다는 주장에 힘을 더한다. ‘뉴스앤조이’ 등은 한기총에 대해 제5공화국 세력이 진보적 종교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운영한 종교대책반의 작품이라고 보도했다.

국정원과거사진실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오충일 목사도 지난 2005년 4월 인터넷언론인 포럼에서 안기부 종교담당 요원이 한기총 창립에 구체적으로 개입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가 주최한 제140차 월례포럼에서 남오성 목사(당시 교회개혁실천연대 사무국장)는 “당시 전두환 정권 초기부터 5공화국 세력이 진보적 종교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종교대책반을 운영하고 보수세력의 조직화를 지원했다”며 한기총 탄생 배경에 정치공작이 개입돼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기총은 한국교회 구성원으로부터 위임받지 않은 대표성을 무단 발휘해 왔다. 복음단체를 가장한 정치단체”라고 일침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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