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 싶어 간다

이승훈(1942~2018)

 

그대 없으면 메모 한 장
남기고 온다.
메모도 필요 없다
그대 집 마당에 내리던 햇살
그대 집 마당에 불던 바람만
알면 된다.
무슨 말이 필요하랴
가고 싶어 간다.

 

[시평]

그래, 그 누구를 만나고 싶으면, 그 보고 싶은 사람이 그곳에 있는지 없는지 확인할 필요도 없이 다만 가서 만나고 싶다는 그 마음 하나만을 지니고 가는 것, 이가 바로 진정 보고 싶은 그 마음이리라. 보고 싶다는 그 마음 하나만을 지니고, 보고 싶은 그 순간, 그대가 있을 듯한 그대의 집으로 가는 거, 이가 진정 보고 싶은 그 사람의 마음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있는지 없는지도 확인조차 하지 않고, 무작정 그대가 보고 싶어 그대가 있는 그의 집으로 갔는데, 그대는 없고, 그래서 다녀갔다는 메모 한 장 남기고 오려고 했는데, 그대 집 마당에 내리던 햇살, 그대 집 마당에 불던 바람, 그 햇살과 바람만 내 다녀간 것 알면 됐지, 더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그대의 집 마당에 내리는 그 햇살, 그대 집 마당에 불던 그 바람이라도 보고 느끼고 왔으면, 비록 그대를 만나지 못하였어도, 그래도, 그래도 그대 보고 싶은 마음 어느 정도 위안을 얻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대가 진정 보고 싶을 때, 문득 그대를 찾아나서는 그 마음,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가고 싶으면 그저 가는, 그런 마음. 그대를 보고 싶다는 그 마음 하나 지니고 무작정 찾아가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대를 보고 싶은 그대에 대한 그리움, 비록 그대를 만나지 못하였어도, 그렇게 다소 위안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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