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II Parallel II, 2014, Copyright Photo Harun Farocki GbR Berlin)’. (제공: 국립현대 미술관)
‘평행(II Parallel II, 2014, Copyright Photo Harun Farocki GbR Berlin)’. (제공: 국립현대 미술관)

 

MMCA ‘하룬 파로키–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전 개최

‘노동의 싱글 숏’ ‘인터페이스’ 등 대표작 9점 공개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17개의 작은 모니터에서 상영되는 영상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베를린, 제네바, 항저우, 부에노스아이레스 등 각각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 퇴근하는 모습이다. 노동의 단편적 기록인 이 이미지들은 영상으로 기록한다는 행위를 통해 우리의 시대, 지역, 역사, 순간을 사유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뤼미에르 형제의 ‘리옹의 뤼미에르 공장 문을 나서는 노동자들’처럼 17개 도시의 다양한 노동자들의 퇴근 모습을 기록한 프로젝트다. 이 작품은 하룬 파로키와 안체 에만 작가의 작품 ‘리메이크-공장을 나서는 사람들(2012~2014)’이다.

노동, 전쟁, 테크놀로지의 이면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며 세계를 지배하는 이미지의 작용방식과 함께 미디어와 산업기술이 인간에게 미치는 폭력성을 끊임없이 비판해온 하룬 파로키 작가의 ‘하룬 파로키–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전이 지난달 27일부터 오는 2019년 4월 7일까지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바르토메우 마리) 서울관에서 개최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첫 번째 전시작품 ‘인터페이스’와 컴퓨터 그래픽이미지의 세계를 분석한 ‘평행’시리즈, 2014년 타계하기 직전까지 진행됐고 사후에도 큐레이터이자 작가인 안체 에만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 ‘노동의 싱글 숏’ 프로젝트를 포함한 총 9점의 작품이 전시된다.

25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된 ‘하룬 파로키–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전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이 전시를 관람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8.10.25
25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된 ‘하룬 파로키–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전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이 전시를 관람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8.10.25

 

‘인터페이스(1995)’는 하룬 파로키 작가가 처음 전시를 목적으로 제작한 작품이다. 미술 전시회를 위해 작품 제작을 권유받은 하룬 파로키 작가는 자신의 에세이 다큐멘터리들을 이중채널 모니터로 재생시켜 두 이미지 사이에 일어나는 현상들을 분석하는 내용을 담은 ‘인터페이스’를 선보였다.

비디오를 편집할 때는 이미 올라와 있는 이미지와 다음 이미지의 미리 보기, 두 장의 이미지를 볼 수 있는데, 영화를 편집할 때는 한 장의 이미지만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작품의 출발점이었다. 두 대의 모니터에서 보여주는 각기 다른 노동 현장의 기록은 당시의 지정학적 맥락과 함께 자본과 노동의 관계를 말해준다.

‘꺼지지 않는 불꽃(Inextinguishable Fire, 1969(2), C opyright Photo Harun Farocki GbR Berlin)’. (제공: 국립현대 미술관)
‘꺼지지 않는 불꽃(Inextinguishable Fire, 1969(2), C opyright Photo Harun Farocki GbR Berlin)’. (제공: 국립현대 미술관)

 

4부로 구성된 ‘평행 I~Ⅳ(2012~2014)’는 컴퓨터 애니메이션의 이미지 장르를 이야기한다. 작가는 컴퓨터 그래픽이미지를 분석해 현실과 이미지의 관계를 조명한다. 작가는 게임 속 아바타를 ‘인간과 배경 사이에 존재하는 상호매개적 존재’라 부른다. 아바타는 가상세계에서 선택의 한계에 부딪히며 완벽한 존재가 되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을 은유한다. ‘평행Ⅰ’은 컴퓨터 그래픽 양식의 역사를 열고, ‘평행 Ⅱ’ ‘평행 Ⅲ’은 게임 속 세상의 경계와 사물의 속성을 탐구한다. ‘평행 Ⅳ’은 게임 플레이어들이 추종하는 게임 속 영웅들을 살펴본다.

구두 수선공, 요리사, 웨이터, 환경미화원 등 매일 갖가지 노동이 각 도시에서 행해진다. 노동은 대부분 닫힌 문 뒤에서 발생한다. ‘노동의 싱글 숏(2011~2017)’은 프로젝트를 진행한 각 15개 워크숍 도시와 지역의 특성에 응답하고 최대한 이를 다루는 게 목표다. 하룬 파로키와 안체 에만은 워크샵 프로젝트라는 제목으로 세계 곳곳의 노동 현장을 단일 숏으로 촬영․제작했다. 관람객들은 생존을 위해 일하는 16개 도시 사람들의 노동을 바라보며 인간이 공통으로 직면한 현실을 직시한다.

전시와 연계해 세계적인 영화학자인 레이몽 벨루(프랑스)를 비롯해 에리카 발솜(영국), 톰 홀러트(독일), 크리스타 블륌링거(오스트리아) 등의 강연이 진행된다. 14일부터는 MMCA 서울 필름앤비디오(MFV) 영화관에서 기존에 소개되지 않은 하룬 파로키의 영화 48편이 상영된다.

25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된 ‘하룬 파로키–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전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이 전시를 관람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8.10.25
25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된 ‘하룬 파로키–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전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이 전시를 관람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8.10.25

 

◆하룬 파로키, 비디오아티스트가 되기까지

독일의 영화감독이자 비디오아티스트인 하룬 파로키는 1944년 인도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1947년에 인도로 이주했고, 1949년에 다시 인도네시아로 건너갔다. 1959년 다시 독일로 돌아온 그의 가족은 의사인 아버지가 함부르크에 외과병원을 차리게 되면서 경제적으로 안정된다. 그러나 학교생활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하룬 파로키는 작가의 꿈을 안고 홀로 서베를린으로 간다. 그는 생계를 위해 일하면서 야간학교에 다녔고, 당시 그가 쓴 리뷰가 라디오나 신문에 채택되기도 했다.

1966년 첫 단편영화 ‘두 개의 길’을 선보인 그는 베를린영화아카데미 1기 입학생으로 들어간다. 이후 작가는 영화를 통해 의미를 생산하는 이미지와 이렇게 생산되는 이미지의 정치·사회적 맥락을 지속해서 분석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