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백은영 기자] 우리나라는 개신교보다 천주교가 먼저 들어왔다. 천주교가 들어온 것은 1700년대 후반이니 기독교가 들어온 지 230년 정도가 됐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 개신교가 들어오게 된 계기는 좀 특이하다고 볼 수 있다. 개신교 선교사들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전 이미 한글로 번역된 성경이 있었고, 이로 인해 이미 복음을 접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세계 기독교 역사상 유래 없는 일로, 그리 길지 않은 기독교 역사 안에서 놀라울 정도로 급성장한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이는 또한 우리 민족이 그만큼 종교성이 강한 민족이라는 점을 방증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번에 소개되는 사진의 대부분은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찍힌 것으로 외국인들에 눈에 비친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귀한 사진이다. 그들이 없었다면 100년 전 우리 민족의 삶과 역사를 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비단 이번에 소개되는 사진뿐 아니라 외국인들에 의해 우연히, 혹은 의도적으로 찍힌 사진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찍은 사진이 있었기에 훗날 잘못된 역사와 문화를 바로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특히 선교사들이 조선에 들어오면서 그들의 사역을 본국에 보고해야 했기 때문에 사진과 문서로 남긴 것들이 지금에 와서 우리의 역사와 문화, 풍습을 다시금 기억하고 되새길 수 있는 귀중한 증거가 되고 있는 것 또한 하나님의 은혜라고 할 수 있다.

배재학당과 아펜젤러의 모습, 평양대부흥운동의 발상지인 장대현교회와 당시 복음을 증거하러 다닌 권서인들의 전도여행 모습 등 다양한 사진들을 만나볼 수 있다.

정동교회 초입 전경(1900)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8.11.1
정동교회 초입 전경(1900)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8.11.1

정동교회 초입 전경(1900)

정동교회는 우리나라에 처음 세워진 감리교 교회당이면서 가장 오래된 빅토리아식 예배당이다. 정동교회는 1885년 4월 5일 입국한 미국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Appenzeller,H.G.)에 의해 세워졌다. 처음에는 한옥을 구입, 남녀를 구분해 예배를 드렸으며 그곳을 ‘베델 예배당’이라 불렀다. 이후 1887년 정동 37번지 일대에 배재학당을 세우고 지금의 정동교회 자리에 있던 한옥을 개조해 감리교 교회당으로 사용했다. 이것이 바로 한국에 세워진 최초의 감리교 교회당이다. 이후 신도가 늘어나면서 새 교회당을 신축하게 되는데 바로 지금의 정동교회다. 이 건물은 5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으며 1895년 9월 정초식을 한 후 1897년 10월 완공됐다.

정동 교회 우물정자(1907)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8.11.1
정동 교회 우물정자(1907) (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8.11.1

정동 교회 우물정자(1907) 

사진은 배재학당에서 교회로 내려가는 길목에서 찍은 사진으로 오른쪽 뒤로 인왕산이 보인다. 다른 사진에는 우물정자(동그라미 표시)가 보이는데, 정동 일대에 유일하게 식수를 공급하는 우물이다. 함석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안에 물 깃는 사람이 보인다.

아펜젤러의 일기를 보면 이 ‘우물’을 마을 깡패들이 독점하려고 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보인다. 4~5년 전 아펜젤러의 후손에 의해 일기가 공개되기 전 본 사진을 소장하고 있던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은 아펜젤러가 ‘우물’ 문제로 고민하던 중 고종황제에게 직접 상소문(탄원서)을 올리기도 한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이와 같은 사실은 배재학당역사박물관에 전시된 일기장 사본(해당 부분 발췌)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당시 정동교회 일대는 미국 공사관, 이화여고, 배재학당 등이 인접해 있어 미국문화가 우리나라에 유입되는 중심지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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