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이현복 기자] 장승·솟대·서각 명인 단초 심종보 선생이 29일 강원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 작업실(초은산방)에서 진행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예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8.10.29
[천지일보=이현복 기자] 장승·솟대·서각 명인 단초 심종보 선생이 29일 강원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 작업실(초은산방)에서 진행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예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8.10.29

어릴적 본 장승에 감동 받아

“하루하루 나무와 대화 나눠”

“작업中 본질적 깨달음 얻어”

명인아카데미 운영 ‘후학양성’

[천지일보=김빛이나 기자] “예술은 ‘감동’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먼저 감동받아야 다른 사람의 마음에도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장승·솟대·서각 명인 단초 심종보 선생은 29일 강원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 작업실(초은산방)에서 진행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예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심 선생은 전통 서각(제13-1101-32호)과 장승(제14-1131-26호) 명인으로 등록됐으며, 솟대(제30-0507119호)와 장승(제30-2009-0005986호) 디자인 특허를 내고 전시·초대작가전·개인전에서 다수의 수상 경력을 갖고 있다.

“지금껏 나무 만지는 일에 후회해 본 적도 없었고, 늘 행복하게 하루하루를 나무와 대화 하는 것에 정성들이고 있다”는 그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처음으로 나무와 사랑에 빠지게 됐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심 선생은 시골에서 나고 자라 어릴 적부터 장승을 많이 봐왔고 시간이 흐를수록 장승이 없어지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마을 절벽에 정자가 있었는데 그곳에는 오래된 장승 하나가 있었다. 그 모습은 이끼에 덮이고 썩어 희미한 형체만 남았지만 어린 그에겐 너무나 큰 감동이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심 선생은 “셀 수없는 세월을 맞아가며 형태가 거의 없어지고 이끼가 돋아 장승인지 썩어버린 고주박인지 알 수 없을 정도의 장승을 본 그날 이후, 미술책에 나온 장승을 작은 나무에 깎아 만들었고 그것에 대해 선생님께서 많은 칭찬을 해주셨다”며 “그때 나는 이미 장승을 깎는 인생길에 놓였던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천지일보=이현복 기자] 장승·솟대·서각 명인 단초 심종보 선생이 29일 강원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 작업실(초은산방)에서 예술품 제작에 몰두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8.10.29
[천지일보=이현복 기자] 장승·솟대·서각 명인 단초 심종보 선생이 29일 강원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 작업실(초은산방)에서 예술품 제작에 몰두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8.10.29

심 선생이 전통공예(장승·솟대·서각)에서 느끼는 매력은 ‘해학적 미감’과 ‘다양성’이다. 그는 단순성, 자연성, 소박성 등을 지닌 장승의 얼굴에는 무기교의 기교, 무계획의 계획이라는 조형적 특징과 기지, 여유가 넘치는 해학적 미감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장승은 한 가지 모습만 아니라 각기 다른 모습들이 매력이 아닐까 싶다”며 “내가 좋아하는 자연 속에 소재가 있어 시간이 나면 늘 산 정상을 찾아가 그곳에서 장승과 솟대의 소재를 찾아 내려온다”고 말했다.

심 선생이 전통공예를 하면서 가장 큰 보람을 느꼈던 부분은 ‘깨달음’이다. 지금껏 어떤 목표를 갖고 각을 하고 장승작업을 한 것은 아니라는 그는 “작업을 하다보면 행복에 대한 답이 명확해진다”며 “부모님조차도 만류하고, 작업하며 부수고 버리면서도 늘 나무와 대화를 하듯 둘만의 시간을 갖는 나의 모습에서 문득 내가 나무와 닮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작업을 하면서 나무의 색감과 휘어짐, 그 휘어짐의 특성을 살려 나의 생각을 넣다보면 본질의 깨달음을 얻는다”며 “성질 꽤나 사나운 옹이를 만나 씨름을 하면서도 그 녀석을 잘 달래가며 작업을 하다보면 그것으로부터 얻는 깨달음에 정적인 마음을 치유하게 된다”고 했다.

심 선생은 “그런 수많은 세월이 겹겹이 쌓여 30여년을 보내왔다. 이런 내 모습에 넉넉한 여유와 30여년의 경력이 묻어나는 작품을 보면서도 보람을 느낀다”며 “그저 나무 만지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니 나는 진정 행복한 사람”이라고 했다.

[천지일보=이현복 기자] 장승·솟대·서각 명인 단초 심종보 선생의 작품. ⓒ천지일보 2018.10.29
[천지일보=이현복 기자] 장승·솟대·서각 명인 단초 심종보 선생의 작품. ⓒ천지일보 2018.10.29

하지만 이런 그에게도 힘든 점은 있었다. 심 선생은 “온전히 작품에만 전념하고 싶지만 먹고 살려면 현실은 돈이 있어야 한다”며 “나무만 만지는 일로서는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다. 아마도 예술을 하는 사람들 누구나 느끼는 것이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예술을 사랑하는 다른 나라처럼 우리나라도 예술인들이 작품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심 선생은 후학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그는 “우리의 전통을 잇는 것이 중요하지만 작업하는 과정이 힘들고 중국과 같이 예술인들에 대한 대우가 좋지 않아 배우고자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적은 것이 사실”이라며 “하지만 나는 장승 솟대 서각의 전통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전승에 큰 뜻을 두고 명인 전승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 선생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질문에 “같은 길을 걷는 후학들이 있다”며 “지금은 한국예술문화명인으로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지만 나아가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운영하며 그들에게 또 다른 나를 만들어 주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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