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의사 기념관. ⓒ천지일보
안중근의사 기념관. ⓒ천지일보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1909년 10월 26일 일본인으로 가장한 한 조선인 안중근이 만주 하얼빈 역에 잠입했다. 오전 9시 30분께 러시아 제국의 재무장관 블라디미르 코콥초프와 회담하기 위해 하얼빈에 온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열차에서 내려 러시아 사열을 받았다.

일본은 오래 전부터 한국 식민지화를 계획했다.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의 모습이며, 1909년 10월 25일 안중근 의사에게 사살됐다. (사진제공: 정성길 명예관장) ⓒ천지일보
일본은 오래 전부터 한국 식민지화를 계획했다.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의 모습이며, 1909년 10월 25일 안중근 의사에게 사살됐다. (사진제공: 정성길 명예관장) ⓒ천지일보

 

“탕. 탕. 탕.”

일본인들 틈에 섞인 안중근은 사열을 마치고 열차로 돌아가던 이토 히로부미를 브라우닝제 반자동권총 M1900으로 저격했다. 안중근이 쏜 일곱발 중 세발은 수행비서관 모리 타이지로우(森泰二郞), 하얼빈 주재 일본 제국 총영사 가와카미 도시히코(川上俊彦), 남만주 철도의 이사 다나카 세이지로우(田中淸次郞)가 맞았다. 저격 당한 이토 히로부미는 열차로 옮겨졌지만 숨을 거뒀으며, 총을 맡은 나머지 사람도 중상을 입었다.

26일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지 109년이 되는 날이다. 저격 후 러시아 경찰에 잡혔던 안중근은 일본 관헌에게 넘겨져 일본 뤼순감옥에 수감됐다. 이듬해 2월 14일, 재판에서 사형이 선고돼 3월 26일 형이 집행됐다.

안중근은 옥중에서 ‘동양평화론(東洋平和論)’을 집필하였으며, 서예에도 뛰어나 옥중에서 휘호한 많은 유묵(遺墨)이 보물로 지정됐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됐고, 1970년 서울시 중구 남대문로 5가 471번지에 기념관이 건립됐다.

나야마사히로 교수가 강의 중에 사용하는 안중근 의사의 사진. (제공: 나야마사히로 교수) ⓒ천지일보
나야마사히로 교수가 강의 중에 사용하는 안중근 의사의 사진. (제공: 나야마사히로 교수) ⓒ천지일보

 

이날 오전 10시 사단법인 안중근의사숭모회(이사장 김황식)는 안중근기념사업관에서 의거 109주년 기념식을 개최한다. 이 자리에는 피우진 국가보훈처장과 독립운동 관련 단체장, 안중근 의사의 외손녀 황은주 여사, 해군 안중근함 함장 김태훈 대령 등 승조원, 시민 등 400여 명이 참석한다.

아울러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는 27일까지 중국 하얼빈에서 의거 109주년을 기념하는 남북 공동행사를 연다. 행사에는 안충석·곽동철 신부를 비롯해 사업회 등 남측 관계자 90명과 북한 조선종교인협의회 등 북측 관계자 약 10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평양공동선언에서 남북이 내년 3.1운동 100주년을 공동으로 기념하기로 함에 따라 남북은 뤼순 감옥 일대 등 안 의사의 유해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을 찾아 함께 조사하고, 황해남도 신천군 청계동의 생가를 복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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