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 2018.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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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삶 방해하는 악독한 흑룡 물리치는 ‘영웅’

韓설화에선 천신이, 中에선 백장군이 싸움에서 이겨”

대종교 1911년 백두산 순례, 천지에서 제천의식 거행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지난달 20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백두산 정상을 찾아가 하늘을 향해 손을 잡고 들어올리는 역사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특히 ‘민족의 영산(靈山)’으로 불리는 백두산, 그것도 꼭데기 천지에서 퍼포먼스가 펼쳐져 국민들의 뇌리에 강하게 박혔다. 신성한 기운이 흐르는 산으로 여겨지는 백두산의 연못 ‘천지’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최근 한국종교문화연구소 하정현 연구원은 ‘백두산 천지(天池)의 신성성의 기원에 대한 단상’이라는 기고글을 통해 백두산 천지를 신성시 여겼던 한민족의 종교성을 되짚었다.

그는 육당 최남선이 1926년 7월 24일 경성을 출발해 7월 29일부터 8월 7일까지 백두산에 머무르며 작성했던 글을 소개하며 “삼국유사의 단군신화가 펼쳐졌다고 여기는 곳, 또 동명신화의 무대가 됐다고 여겨지는 신성한 공간을 여행하는 순례자와 같다”고 말했다.

최남선은 백두산 천지에 대해 “천제(天帝)의 대궐(大闕)이요 천화(天花)의 근원”이라고 감탄하며 “조선의 마음이 어떻게 발전하였는지, 조선의 역사가 어떻게 펼쳐졌는지, 조선의 운명이 무엇으로써 그 구심점 추기를 삼는지를 조금이라도 살피고 생각한 이로야, 천지를 한 늪으로 아는 이가 반쪽인들 있을 것이냐? 안 될 말이지”라고 기록했다.

하 연구원은 “(육당 최남선은) “전통적 신화를 구체적인 장소에 연결시킴으로써 그것이 허구가 아니라 실재임을 직접 체험하는 것은 마치 그가 백두산 천지를 민족의 성지로 거듭나는 의식을 치루는 것으로 여겨진다”고 평가했다.

고대로부터 백두산 천지는 우리 민족에게 신성한 의미를 갖고 있다. 이는 백두산 천지에 얽힌 설화에서 살펴볼 수 있다. 백두산 설화 중 ‘천지’ ‘용을 동여맨 돌기둥 천지를 기운’ ‘돌바늘’ ‘세 쌍둥이 별’ ‘백운봉’ ‘내두산과 칠성봉’ 등은 특히 신화적인 특성이 있다.

전남대 국어교육학과 장나가 지난 2012년 2월 발표한 석사학위 논문에 따르면 이 설화의 핵심적인 줄거리는 사람들의 삶을 방해하는 악독한 흑룡을 물리치는 영웅적 인간의 활약상을 묘사하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설화 ‘천지’는 우리 전설과 같은 이름인 ‘천지(天池)’라는 이름의 중국 전설이 있다.

우리 전설에 등장하는 주요 출연자는 용과 신이다. 자연재해로 사람을 괴롭히는 용을 절대자인 신이 정리해 천지에 안정이 찾아온다는 내용이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어떠한 역할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반면 중국 전설에서는 흑룡과 백장수가 등장하는데, 이 백장수가 하늘에 도움을 받아 힘을 얻어 결국 흑룡을 물리치고 세상에 안정을 찾아준다는 내용이다.

장나는 “한국과 중국의 전설 모두 세상을 인간과 자연과 신이라는 삼각구도로 보고 있다는 공통점이 흥미롭다”고 강조했다. 두 이야기들은 사람들을 용으로부터 구해줄 존재가 있음을 알리는 예언적인 성격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희망이 담긴 백두산 천지에서는 고대로부터 천제(天祭)가 진행됐다.

근대에도 천제의 흔적은 있다. 홍암 나철은 1909년 경성 제동 취운정 아래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단군교를 열었다. 1910년 홍암은 단군교에서 대종교로 개칭했고, 1911년 백두산을 순례하고 백두산 천지에서 제천의식을 거행했다.

하 연구원은 “이때 백두산을 천조산(天助山), 천산(天山), 삼신산(三神山)이라고 칭하며 천신(天神)시조인 단군이 이 산에서 내려왔고 천신자손도 이 산에서 나왔다”고 주장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환웅은 무려 3000명을 거느리고 태백산 정상의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 이곳을 신시라 일렀다. 일연은 태백은 오늘날 묘향산이라고 하지만 일부 학자들은 백두산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 연구원은 “19세기 말에서 20세가 초 극적인 변화를 겪었던 시대상황을 고려해보면 이 시기에 하늘에 제사를 올릴 수 있는 신성한 공간과 극적인 장면의 연출은 우리 민족 존립의 근거로 절박했을 것”이라며 “이 시기에 백두와 천지, 하늘 그리고 민족이 연결되면서 백두산은 민족의 성산 혹은 영산으로 구심점의 추기가 되지 않았을까”라고 분석했다.

정진홍은 자신의 저서 ‘하늘과 순수와 상상’ 34p에서 “(백두산) 천지(天池)에 담긴 것이 물이 아니라 하늘이어서 천지라고 일컬었음을 우리가 잊지 않고 있는 한 우리의 구원론은 아직 살아있음에 틀림 없다… 하늘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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