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루비아 

신현정(1948~2009)

꽃말을 알지 못하지만 나는
사루비아에게
혹시 병상에 드러누운 내가
피가 모자랄 것 같으면
수혈을 부탁할 거라고
말을 조용히 건넨 적이 있다
유난히 짙푸른 하늘 아래에서가 아니었는가 싶다
사루비아, 수혈을 부탁해.

 

[시평]

신현정이가 저 세상으로 떠난 지 내년이면 벌써 10주기다. 참으로 세월이 빨리도 간다. 병상의 창문 밖으로 보이는 사루비아, 그 빨갛게 핀 꽃들을 바라보면서, 가을을 아프게 견뎠을 시인 신현정을 생각한다. 

사루비아, 그 꽃말은 알 수가 없어, 그 꽃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 생각할 수는 없어도, 빨간 핏빛으로 핀 사루비아 꽃을 바라보면서, 머잖아 죽음을 맞이할 것을 이미 알고 있던 그, 사루비아에게 조용히 말을 걸어본다. ‘사루비아, 수혈을 부탁해’, 유난히 짙푸른 이 이승의 하늘 아래에서.

창밖의 사루비아에게 자신을 부탁하던 신현정. 신(神)에게, 또 어느 누구에게도 자신의 삶을 조금만치라도 연장해 달라고 간절히 부탁을 해도 어쩌지 못한다는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던, 그 절박함이 절절이 담겨진 그런 말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수혈도 또 어떤 처치도 필요하지 않은 다른 세계에 있을 신현정, 이제 사루비아 붉은 꽃을 바라보며, 수혈을 부탁하지 않고, 그 붉은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을 신현정. 부디 이 가을 짙푸른 어느 하늘에서 그 푸르름과도 같이 평안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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