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박선아 기자] ‘코끼리 수레(1999~2001, 혼합매체)’는 예술가 백남준의 미디어에  대한 기억을 담아낸 작품이다. ⓒ천지일보 2018.10.17
[천지일보=박선아 기자] ‘코끼리 수레(1999~2001, 혼합매체)’는 예술가 백남준의 미디어에 대한 기억을 담아낸 작품이다. ⓒ천지일보 2018.10.17

 

백남준아트센터, 10주년 기념전

‘공유지’로써 미술관의 가능성 실험

10년간 전시 참여한 작가들과 함께

예술의 존재론·소통방식 탐색해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예술은 사유재산이 아니다.”

미디어 아트의 개척자로서 다양한 테크놀로지를 이용해 실험적이고 창의적으로 작업했던 예술가 백남준은 생전에 늘 이같이 말했다. 과학자이며 철학자인 동시에 엔지니어인 새로운 예술가 종족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그는 ‘예술가의 역할이 미래에 대한 사유에 있다’고 보고 예술을 통한 전 지구적 소통과 만남을 추구했다.

백남준아트센터가 개관 10주년을 맞아 비디오 아트를 공유지(Commons)로 바라본 백남준의 전복적인 사유를 추적한다.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 백남준아트센터(관장 서진석)는 내년 2월 3일까지 ‘예술 공유지, 백남준’이라는 모토로 개관 10주년 기념전 ‘#예술 #공유지 #백남준’전을 개최한다.

◆백남준, 예술의 민주적 창작·사용 고민

1970년대 텔레비전 영상 문화는 민족주의적 편향된 시각만을 전달해 민족 간의 소통을 저해하고 있다고 비판받았다. 그러나 백남준의 시각은 달랐다. 백남준은 ‘글로벌 그루브와 비디오 공동시장(1970)’이라는 글을 통해 “비디오를 유럽공동시장의 원형처럼 자유롭게 소통시켜 정보와 유통이 활성화되는 일종의 공유지로 바라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음악과 무용 프로그램이 백인과 흑인, 동양과 서양,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를 이어줄 수 있으며, 이를 자유롭게 확장해 공유한다면 교육적·오락적 효과가 높을 것이라고 백남준은 장담했다.

이러한 생각은 그가 몸담았던 예술 공동체 ’플럭서스(Fluxus)‘가 지향했던 예술의 민주적 창작과 사용에 대한 고민과 연결된다. 이번 전시에선 ▲공유재로서의 미디어의 역사 ▲플럭서스와 예술 공동체에 대한 탐구 ▲신디사이저에 대한 지적 재산을 공동의 것으로 남겨둔 백남준의 선구적인 아이디어가 소개된다. 백남준의 작품 ‘데콜라주 바다의 플럭서스 섬’ ‘백-아베 비디오 신디사이저’ ‘코끼리 수레’ ‘굿모닝 미스터 오웰’ 등이 그 주인공이다.

특히 작품 ‘백-아베 비디오 신디사이저(1969·1972, 비디오 편집 및 합성 장치, 백남준아트센터 소장)’에는 예술의 새로운 존재론과 소통 방식에 대한 백남준의 고민이 담겼다.

[천지일보=박선아 기자]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 위치한 백남준아트센터가 개관 10주년을 맞아 기념전시 ‘#예술#공유지#백남준’을 오는 11일부터 내년 2월 3일까지 개최한다. 10일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들이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천지일보 2018.10.10
[천지일보=박선아 기자]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 위치한 백남준아트센터가 개관 10주년을 맞아 기념전시 ‘#예술#공유지#백남준’을 오는 11일부터 내년 2월 3일까지 개최한다. 10일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들이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천지일보 2018.10.10

 

백남준은 비디오 신디사이저의 기술적인 부분을 공개해 사람들이 비디오 아트를 피아노처럼 개인적인 예술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기를 원했다. ‘백-아베’라는 비디오 신디사이저의 이름이 의미하듯 이 작품은 백남준과 테크니션인 슈야 아베와의 공동의 창작물이다.

‘백-아베 비디오 신디사이저’는 카메라 등 여러 외부 영상 소스를 받아 실시간으로 색과 형태를 변형하는 영상편집이 가능한 기계이며, 1970년 보스턴의 WGBH 방송국을 통해 방영된 ‘비디오 코뮨’과 1977년 뉴욕의 WNET를 통해 방영된 ‘미디어 셔틀-뉴욕·모스크바’등의 영상을 제작하는 데 사용됐다.

백남준아트센터는 2011년 슈야 아베와 협력해 ‘백-아베 비디오 신디사이저 복원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신디사이저의 기능을 복원했다. 이번 전시에선 복원된 비디오 신디사이저와 4대의 모니터가 백남준이 1974년 뉴욕 갤러리아 보니노에서 개최한 제3회 개인전에 전시했던 비디오 신디사이저와 참여 TV를 결합한 형태로 설치됐다. 작품은 관객들을 촬영하고 비디오 신디사이저를 통해 영상을 추상적 패턴으로 왜곡시킨다.

[천지일보=박선아 기자] 파트타임스위트의 ‘부동산의 발라드1’ 중 오브제 설치 작품인 열쇠와 벨트. ⓒ천지일보 2018.10.17
[천지일보=박선아 기자] 파트타임스위트의 ‘부동산의 발라드1’ 중 오브제 설치 작품인 열쇠와 벨트. ⓒ천지일보 2018.10.17

 

◆센터의 10년 뒤… 작가들, 정체성·방향성 드러내

10주년 기념전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지난 10년간 백남준아트센터의 전시·퍼포먼스·교육 프로그램 등에 참여했으며, 앞으로 10년간의 백남준아트센터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드러낸다. 이번 전시는 예술로 새롭게 세상과 소통하고 재건하고자 했던 백남준과 요셉 보이스의 선구적 사유에 대한 탐구를 시작으로, 동시대 예술가들이 제시하는 ‘세상을 감각하고 지각하며 중재하는 예술의 역할’에 대한 논의로 확장된다.

안규철, 옥인 콜렉티브, 다페르튜토 스튜디오, 언메이크랩 X 데이터 유니온 콜렉티브, 정재철 작가가 자신들의 신작으로 이를 논의한다. 안규철 작가는 소리를 굴절해 반사하는 사운드 미러 작품 ‘세상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있다’를 전시장에 설치했다. 사운드 미러 앞에 마련된 발판에 관객이 서면 안 작가의 목소리로 녹음된 다양한 문장이 공간을 울려 퍼진다.

옥인 콜렉티브는 ‘The More, The Better(다다익선)’이라는 작업으로 예술 작품의 탄생과 죽음에 질문을 던진다.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의 ‘다다익선’이 멈춘 현재 예술 작품의 보존과 복원과 소멸에 관여하는 것은 어떤 요소이며 그 과정에서 예술가의 위치와 관객의 위치는 어디에 있는지를 탐구한다.

[천지일보=박선아 기자] 정재철의 ‘크라켄-또 다른 부분(2018. 설치%영상, 혼합매체). ⓒ천지일보 2018.10.17
[천지일보=박선아 기자] 정재철의 ‘크라켄-또 다른 부분(2018. 설치%영상, 혼합매체). ⓒ천지일보 2018.10.17

 

◆백남준 작품, 명성 많이 높이 평가받지 못해

지난 4월 예능프로그램 ‘서울메이트’에서 앤디하우스의 손님 토마스와 알렉스가 백남준의 작품에 감동하는 모습이 방영됐다. 비디오 아트를 전공한 이들은 “학교에서 백남준의 작품을 학교에서 가장 처음 배웠다”고 말했다. 백남준아트센터를 찾은 토마스는 “백남준의 작품이 영향력이 크다”라고 말했고, 알렉스는 “실제로 작품을 보고 울었다”고 전했다. 이들은 센터에서 백남준의 작품을 실제로 보고 입을 다물지 못하는 등 감탄을 금치 못했다.

서진석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은 “백남준 작가님의 작품은 볼 때마다 의미와 해석이 달라진다. 알면 알수록 깊이 있는 게 작품의 매력”이라며 “동시대 어떤 작가보다 예술이 공유되길 원했고, 이를 위해 많은 연구를 했다. 이러한 백 작가님의 노력이 오늘날 높게 평가받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천지일보=박선아 기자] 리미니 프로토콜의 ‘100% 도시’ ‘100% 광주’. ⓒ천지일보 2018.10.17
[천지일보=박선아 기자] 리미니 프로토콜의 ‘100% 도시’ ‘100% 광주’. ⓒ천지일보 2018.10.17

 

이처럼 한국 출신의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은 1960년대 플럭서스 운동의 중심에 있으면서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공연과 전시로 센세이션을 일으켜 세계에서 인정받은 비디오 예술의 선구자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과연 세계의 미술사를 뒤흔든 명성만큼 인정받지 못하는 듯하다. 지난 1월 24일 케이옥션 2018년 첫 경매에 백남준의 비디오 조각 작품 ‘Eco-V toleo Tree’가 출품됐다. 거대한 나무를 총 23개 모니터, 2개의 엔틱 캐비닛으로 표현해 3m가 넘는 이 대작은 경매에서 시작가 3억원에 경합 없이 낙찰됐다.

백남준 작가의 작품은 대부분 3~4억원대로, 동시대에 활동한 팝아트 거장 앤디 워홀의 작품 ‘실버 카 크래시(Silver Car Crash)’가 낙찰가 1억 540만 미국 달러인 것과 비교하면 160분의 1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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