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유은혜 사회부총리는 고교 무상교육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늦어도 내년 2학기부터는 시행할 방침이다. 예산을 두고 정부 안에서 엇박자를 내고 있긴 하지만 민심에 부응하는 정책임은 틀림없다. 

‘고교 무상교육’이 정치권에 등장한 지는 꽤 오래 됐다. 2000년 출범한 민주노동당이 2004년 총선 때 무상의료와 함께 무상교육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유럽의 복지국가 정책을 적극 수용한 이들 정책은 많은 국민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2010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계기로 무상급식이 전국적인 이슈로 부상했고 바로 이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이 보편복지 노선을 채택하고 무상보육, 무상급식, 무상의료와 함께 반값등록금을 공약으로 내어 놓았다. 

2012년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총선이 채 한 달도 안남은 시점에 공공임대주택 120만호 공약과 함께 고교 무상교육 공약을 내어 놓았다. 박 후보가 당선될 경우 재정이 상대적으로 덜 드는 고교 무상교육은 쉽게 도입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박근혜 후보는 당선된 뒤 고교 무상교육 공약을 지키는 시늉만 했다. 공공임대주택 120만호는 그야말로 뻥이었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는 ‘고등학교 무상교육’을 공약했다. 대통령에 취임한 지 1년 반이 지나고 나서야 ‘고교 무상교육’이 가시권에 들어온다는 건 문제가 심각하다. 공약 실현 의지가 있었나 싶은 것이다. 정부는 고교 무상교육을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시키긴 했지만 2020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하겠다고 했었다. 공약을 실현하려면 취임 첫해부터 공약 실현 작업에 들어갔어야 했다. 

누군가 무상교육, 무상의료, 무상급식을 공약으로 내어 놓으면 “돈은 어떻게 할 건데?”라는 말부터 튀어 나온다. ‘돈’을 맨 먼저 꺼내는 이유가 ‘돈’을 진정으로 걱정하는 것이라면 머리를 맞대면 된다. 하지만 복지공약과 복지정책을 처음부터 ‘원천봉쇄’하기 위한 것이라면 백해무익한 행동이다. 

복지공약이 등장하자마자 “돈은?” 하면서 기를 꺾어 놓고 ‘돈을 구하기 힘드니까 할 수 없다’고 한다면 돈이 아주 적게 드는 정책은 몰라도 상당한 규모의 돈이 들어가는 정책은 채택할 수 없게 되고 새로운 복지정책 또는 민생정책 도입은 불가능해진다. 한국 사회는 양극화와 빈익빈 부익부의 흐름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양극화가 극복되지 않고 ‘이대로’ 계속된다면 한국 사회는 어떻게 될까. 

우리 민족은 콩 한 알도 쌀 한 톨도 나눠 먹었다. 나누고 배려하고 이웃에 굶는 사람 누구 없나 살피면서 살았다. 굴뚝에 나는 연기 크기에도 신경 쓰면서 살아온 공동체다. 언젠가부터 함께 나누는 문화가 깨지기 시작했고 이제 수습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 말았다.  

민주노동당 등장과 무상급식 정국 이후에 조성된 복지국가의 흐름은 ‘극단적으로 심화된 양극화 문제를 풀어보자’는 사회적 몸부림이었다. ‘무상’이라는 말이 붙든 안 붙든 복지정책이 도입될 때마다 “돈은?” 하면서 재정 타령부터 한다면, 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포퓰리즘이라고 비난부터 한다면 양극화된 한국사회를 치유할 방법을 찾는 건 불가능하다. 

독일, 프랑스, 영국은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복지국가 건설의 길을 걸었다. ‘풍요롭게 되면 복지국가 하겠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는데 모순되는 말이다. 함께 나누지 못하면 모두가 풍요로운 세상은 오지 않는다. 소수에겐 ‘풍요’가 넘치고 다수에겐 ‘빈곤’이 심화되는 사회가 계속될 뿐이다. 서로 나누면서 더불어 사는 사회가 복지국가다. 양극화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 했다. 무상교육이 될 때 교육기회는 평등하고 교육 과정은 공정하고 교육 결과는 정의롭게 될 것이다. 교육평등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국강령이다. 고교 무상교육을 시작으로 교육평등권을 누리는 사회로 나아가길 기대해 본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