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자 선생의 대표작인 그림 ‘한매쌍작’ (제공: 고미술품 전문 갤러리인 고은당) ⓒ천지일보 2018.9.28
이방자 선생의 대표작인 그림 ‘한매쌍작’ (제공: 고미술품 전문 갤러리인 고은당) ⓒ천지일보 2018.9.28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
제2고향서 칠보 작품 등 남겨 

고은당 정하근 소장품展서 공개
30년간 사비 털어 하나둘 수집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내게는 두 개의 조국이 있다. 하나는 나를 낳아준 곳이고, 하나는 나에게 삶의 혼을 넣어주고 내가 묻힐 곳이다. 내 남편이 묻혀있고 내가 묻혀야 할 조국 이 땅을 나는 나의 조국으로 생각한다.’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비인 이방자 여사의 어록 중 한 내용이다. 누구보다도 대한제국을 사랑했던 이방자 여사는 심신 장애인들의 어머니로서 한평생을 살다간 인물이기도 했다. 이방자 여사의 정신은 그가 남긴 작품과 유품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이와 관련,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3일부터 15일까지 열리는 ‘고은당 정하근 소장품 전(展)’에서는 이방자 여사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작품이 공개됐다. 

◆낙선재 기거한 이방자 여사

이방자 여사는 일본 메이지 천황의 조카다. 1920년 4월 28일 조선 제26대 왕이며 대한제국 제1대 황제인 고종(高宗)의 일곱째 아들인 대한제국 황태자 이은(李垠)과 일본에서 결혼하여 일본에 거주했다. 1945년 일본의 패전 후 이왕가(李王家)가 폐지되면서 일본에서 생활하던 중 1963년 가족과 귀국해 한국 국적을 회복했다.

그리고 창덕궁 낙선재에 기거했다. 1971년 수원시 탑동에 정신지체아 교육시설인 자혜학교와 1982년 신체 장애아 교육시설 명혜학교를 광명시에 세워 평생을 헌신적인 열정으로 소외된 이들을 위한 삶을 살았다. 그는 자신이 일본에서 배운 칠보 기술로 서울칠보연구소를 설립해 신체장애인의 재활과 가난한 한국 젊은이의 자립을 위해 그 기술을 전수했다.

여사는 이와 함께 어려서부터 타고난 예술적 감성을 연마해 서예와 회화에서 자수와 칠보 작품에 이르기까지 승화된 예술성을 전문 평론가들이 작가로 인정했던 예술가였다.

여사는 작품을 판매한 그 수익금으로 심신 장애자들의 재활과 교육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 그러다 1989년 4월 30일 대한 제국의 마지막 황태자비의 삶을 마감했다.

이방자 여사 사진 (제공: 고미술품 전문 갤러리인 고은당) ⓒ천지일보 2018.9.28
이방자 여사 사진 (제공: 고미술품 전문 갤러리인 고은당) ⓒ천지일보 2018.9.28

◆정하근 선생 사비 털어 작품 수집

이후 여사의 헌신적인 마음이 담겨있는 나라의 정신이라 할 수 있는 작품들은 상업적인 대상으로 거래됐다. 이를 안타까워하던 고은당 정하근 대표는 사재를 털어 30여년간 작품을 수집했다.

정 대표는 “전시회를 계기로 한국과 일본의 정부 관계자는 이 전시회가 일본에서 열릴 수 있는 대책을 조속히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정 대표는 이 전시회가 그 어떠한 말도 불필요한 한일 근대역사의 실체적인 현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비 이방자 여사 작품전은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인 현장이며 무대라고 덧붙였다.

전시에는 회화작품 50점, 서예작품 18점, 도자 작품 34점, 칠보 작품 32점 등 170여점의  작품이 공개됐다.

‘남녀 칠보 혼례복’은 이방자 여사의 대표작으로, 혼례복에 들어간 모든 문양 및 문자를 칠보로 제작했다. 일반적으로 수를 사용해 제작하지만 칠보를 우리나라에 전파한 이방자 여사는 직접 1년여의 시간에 걸쳐 손수 만드신 작품이다.

이방자 여사는 먼저 하늘나라로 떠난 남편 영친왕을 그리워하며 ‘한매쌍작’ 그림을 그렸다. 추운 겨울에 핀 매화 나뭇가지에 한 쌍의 새가 정답게 담소를 나누듯 않아있는 모습은 마치 정략결혼의 슬픈 사연을 간직한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의 애틋한 사연이 담겨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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