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본 관동대지진 대학살의 실체 표지 ⓒ천지일보 2018.9.28
사진으로 본 관동대지진 대학살의 실체 표지 ⓒ천지일보 2018.9.28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1923년 9월 1일 도쿄, 요코하마를 중심으로 일본 관동 지역에 진도 7.0이상의 초강력 지진이 발생하자 일본 관동지역은 건물이 무너지고 화재가 발생하는 등 대부분 폐허가 될 정도로 피해가 심각했다. 일본정부는 지진으로 인한 경제파탄으로 울분이 터진 민심을 달래기 위해 희생양을 조선인으로 돌렸다.

일본 정부는 곧바로 계엄사령부를 설치하고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킨다’ ‘조선인이 방화했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넣었다’ 등으로 유언비어를 퍼뜨렸고, 형무소에 수감 중인 죄수들까지 다 내보내 자경단을 구성해 조선인 대학살을 자행했다. 이들에 의해 학살된 조선인은 독립신문에서는 6천여명으로 발표됐으나 독일 문헌에서는 2만 3000명 이상으로 기록됐다.

사진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시신들이 마치 쓰레기더미처럼 쌓여 있고, 처참하게 죽인 사진 등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사진들이 많다. 이는 일본인이 우리 선조들을 학살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사진들이다.

이 사진들은 당시 일본에 있던 서양인들이 충격적인 현장을 보고 카메라에 담았으나 이는 공개되지 않고 개인적으로 대부분 보관돼왔다. 이를 정성길 사진연구가가 수소문 끝에 구한 귀중한 사진들이다. 관동대지진 사건과 관련한 수백 장의 사진을 모은 정 연구가는 이 사건의 실체를 낱낱이 밝히기 위해 수년간의 작업을 통해 400여장(일제시대 기록사진 포함 총 500여장 수록)의 사진을 책으로 묶어 발간했다.

올해는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사건 95주기다. 일본은 당시 일부 의식 있는 언론들에 의해 이 사건이 잘못된 유언비어에 의해 많은 조선인이 무고하게 희생됐다는 사실을 알아내 기사와 사설 등으로 언론에 내보냈다. 이에 일본 내부에서도 교과서에 명백히 일본인이 조선인을 학살했다는 내용을 기술했다. 그러나 시간이 점차 흐르면서 일본은 학살이라는 표현을 ‘살해’라고 수정한 데 이어 ‘희생’이라고 변경하더니 급기야 2013년 초에는 교과서에서 내용을 삭제하는 등 자신의 선조들이 저지른 행위에 대해 미화 혹은 왜곡시켜왔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우리나라는 이 사건에 대해 그럼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부끄러운 현실이지만 정작 우리는 국사 교과서에조차 거의 언급이 안 되고 있다. 또한 어떠한 정부차원의 규명작업 역시 없어 잊어져 가고만 있다. 지난 2014년 19대 국회 여야 의원 103명이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위원회’를 설치하는 특별법안을 발의했으나 통과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1948년 유엔총회에서는 제노사이드(genocide, 집단학살)에 관한 협약이 승인되고 인종·이념 등의 대립을 이유로 특정집단을 대량학살하는 행위를 범죄로 정의하는 국제법을 통과시켰다. 이에 중국의 난징대학살과 나치에 의한 유태인 학살이 최초로 제노사이드 범죄로 적용됐다. 관동대지진 대학살 사건은 제노사이드로 인정돼야 할 중대한 사건이 분명함에도 아직까지 정부 차원의 움직임이 없다. 현재 일본은 계속해서 정부 차원에서 이 같은 역사적 사건을 자국 교과서 내용에서 수정·삭제 등으로 덮어가려고 하고 있거나 학살이 아니라는 핑계를 대고 있다. 이러한 때에 이 책은 일본의 관동대지진 대학살을 입증할 중요한 사진 자료가 되는 동시에 역사적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움직임에 불을 붙일 것으로 기대를 모으게 하는 기록사진들이다.

책은 온라인(옥션, 지마켓)에서만 판매되고 있다. 책 수익금은 관동대지진 희생자 위령탑 건립에 사용된다.

관동대지진 당시 일본의 만행 ⓒ천지일보 2018.9.28
관동대지진 당시 일본의 만행. 조선인을 학살해 한곳에 모아놓은 가운데 하의가 벗겨진 여성 시신의 음부를 막대기로 찔러보고 있는 일본인 간부의 모습이다. ⓒ천지일보 2018.9.28
관동대지진 당시 일본의 조선인 대학살 ⓒ천지일보 2018.9.28
관동대지진 당시 일본의 조선인 대학살 ⓒ천지일보 2018.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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