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이현복 기자] 조선 시대에 황장목, 일제강점기엔 적송, 광복 후엔 춘양목 등으로 불린 황장목(금강송)이 하늘을 향해 늘씬하게 뻗어 있다. ⓒ천지일보 2018.9.14
[천지일보=이현복 기자] 조선 시대에 황장목, 일제강점기엔 적송, 광복 후엔 춘양목 등으로 불린 황장목(금강송)이 하늘을 향해 늘씬하게 뻗어 있다. ⓒ천지일보 2018.9.14
[천지일보=이현복 기자] 조선 시대에 황장목, 일제강점기엔 적송, 광복 후엔 춘양목 등으로 불린 황장목(금강송)이 하늘을 향해 늘씬하게 뻗어 있다. ⓒ천지일보 2018.9.14

20~30m 키 큰 아름드리나무들
‘왕의 나무’ 일반인들 벨 수 없어

아홉 마리 용과 거북바위 ‘구룡사’
비로봉 정상 향하는 등산코스도

[천지일보=이지예 기자] 거짓말처럼 가을이 찾아왔다. 폭염이 기승이었던 만큼 추운 겨울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일이다. 어서 이 가을을 즐겨야 한다.

8월 말 여름이 끝나가는 즈음 원주 치악산 ‘황장목 숲길’을 찾았다.

옛날에는 ‘적악산(赤岳山)’이라 불릴 만큼 가을이면 울긋불긋한 단풍이 산 전체를 뒤덮어 아름다운 치악산이다. 푸르름의 상징인 소나무의 ‘황장목 숲길‘은 여름에 찾기 좋은 트레킹 코스로 알려져 있다.

구룡사 권역이라 ‘황장목(금강송) 숲길’을 비롯해 치악산을 등반 하려면 소정의 입장료를 내야한다. 구룡사를 들를 생각이 없어도 구룡사에 돈을 내야 통행이 가능하다는 점은 의문이다. 전국 등산로에 절을 끼고 있는 곳이면 입장료를 내는 게 관례처럼 굳어져 있다. 하지만 굳이 내야한다면 해당 절을 보러온 사람만 입장료를 내야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늘 든다.

구룡사를 창건한 신라 말 고승 도선국사는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할까. 종교계에 굳어진 이권을 제자리에 놓는 일은 쉬운 게 아니란 생각이 든다.

숲길에 진입하니, 키가 20~30m 높이에 달하는 크고 웅장한 금강송들이 하늘을 향해 뻗어있다.

치악산 구룡사계곡 입구안내소를 지나면 강원도 기념물 30호인 황장목금표가 있다. ⓒ천지일보 2018.9.14
치악산 구룡사계곡 입구안내소를 지나면 강원도 기념물 30호인 황장목금표가 있다. ⓒ천지일보 2018.9.14

진입로 좌측에 야트막한 산비탈 위로 표시석이 눈에 띄어 확인해보니 황장금표가 자리해 있다.

황장목은 나무 중심부분이 붉은 색깔을 띠고 나무질이 단단한 좋은 소나무를 말한다.

조선시대 궁궐을 짓거나 관을 만들 때 사용해 ‘왕의 나무’라 일컬어진다. 광화문, 숭례문 복원에도 ‘금강송’이 쓰였다.

이 황장금표는 황장목을 보호하기 위해 일반인들의 벌목을 금한다는 표시석으로 치악산국립공원 내에 2개가 있다고 설명돼 있다.

과거 조정의 허락 없이 함부로 벨 수 없었으니 오늘날까지도 자라온 자태가 과연 기세등등했다.

황장목 숲길은 구룡사를 지나 세렴폭포까지 갔다가 다시 매표소 쪽으로 돌아오는 원점회기 코스로 구성돼 있다.

구룡사로 향하는 산 초입에 나무 데크길이 조성돼 있는데 계곡과 바로 맞닿아 있다. 특히 이날은 태풍이 지나가고 한바탕 비를 뿌린 터라 계곡물이 불어 콸콸 흘러넘쳤다.

마침 물이 많은 날 와서 운이 좋았다 싶었는데, 태풍이 너무 세게 불어 데크길이 그만 끊어졌단다. 출입이 제한된 게 못내 아쉬워 “대체 어디가 잘못됐다는거야”라고 툴툴거리면서 올라가다가 피해 현장을 목격하게 됐다.

태풍의 기세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황장목 한 그루를 뚝딱 꺾어버렸고 나무가 넘어지면서 데크길을 와작 끊어 놨다.

남자성인 팔로 안아도 훨씬 넘치는 아름드리라 제아무리 태풍이라도 쉽게 부러뜨릴 수 없었을텐데, 너무 키가 큰 게 문제였을까 원인을 짐작해볼 뿐이었다.

태풍에 꺾인 금강송의 단면. ⓒ천지일보 2018.9.14
태풍에 꺾인 금강송의 단면. ⓒ천지일보 2018.9.14

관리자들이 부러진 나무를 임의로 동강을 내서 길가에 나뒀다. 등산객들이 몇 개로 나뉜 튼실한 나무 몸통들을 보고 아쉬운 눈빛을 보낸다. 하나 가져가서 나무의자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나만 하는 게 아닌가 보다.

하물며 왕실에서나 쓰인 목재니 말이다. 나이테가 꽤나 선명해 하나씩 세어보다 무늬가 헛갈려 끝까지 셀 수가 없었다. 금강송은 생육 조건이 좋지 않은 척박지나 암석지에서 더디게 자라 나이테가 일반 소나무보다 3배나 촘촘하다고 한다.

뒤틀림이 적고 강도도 높다. 송진 함량이 상대적으로 높아 쉽게 썩지 않는다고 하니 중요한 건물을 지을 때 사용하기에 적절한 재목이 된 것이다.

황장목의 속살까지 구경했으니 가는 길을 재촉해 보았다. 큰 키의 황장목들이 호위하는 것 같아 숲길에 안정감이 든다. 계곡 물과 숲이 내뿜는 피톤치드로 샤워하는 기분도 든다. 기분 좋은 공기를 놓칠 새라 최대한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산 초입을 지나 구룡사를 지나면 경사가 완만한 숲길이 계속 이어진다. 구룡사 이름에 얽힌 설화는 신라시대 아홉마리 용 이야기의 구룡사(九龍寺)와 조선 중기 거북바위 설화에 의해 개칭된 구룡사(龜龍寺) 두 가지로 나뉜다. 현재의 이름은 거북이의 의미가 들어간 구룡사(龜龍寺)인데 절 입구 거북바위가 설화의 주인공이니 살펴볼만 하다.

황장목길을 두 노인이 담소를 나누며 걷고 있다. ⓒ천지일보 2018.9.14
황장목길을 두 노인이 담소를 나누며 걷고 있다. ⓒ천지일보 2018.9.14

구룡사를 통하는 등산로는 치악산 정상인 비로봉(1288m)으로 통하는 최단코스라고 한다. 금강송 길은 세렴폭포에서 반환점을 돈다. 구룡사에서 세렴폭포까지는 1.5km가량 되고 세렴폭포에서 비로봉까지는 두 갈래 길을 통해 오를 수 있다. 등산코스로 가려면 세렴폭포에서 비로봉을 넘어 황골삼거리를 지나 신선대와 입석사 등을 거쳐 반대편 탐방로로 도달할 수 있다.

세렴폭포는에 도달하니 산줄기를 타고 내려온 물이 콸콸 쏟아지고 있었다. 마음을 씻어도 깨끗해 질만한 물은 혹시 이렇게 생겼을까. 물이 정말 맑았다. 시원한 물소리와 함께 땀을 식히고 반환점을 돌아 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갔다. 정오가 지나니 햇볕이 뜨거워졌으나 울창한 숲 덕분에 더위 걱정은 없었다. 칡꽃이 만발하여 향긋한 꽃내음이 진동한다. 아직은 파릇한 단풍나무들이 곧 익어 빨갛게 물이 들겠다.

금강송 길은 경사가 완만하고 길이가 길지 않아 누구나 가볍게 걷기 좋다. 혹 가파른 일상에 지칠 때가 있다면 이 길이 꼭 다시 생각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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