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명절증후군이란 말이 있다. 해치워야 할 일거리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다 속속들이 친하지도 살갑지도 않은 시댁 식구들과 속마음 감춰가며 대면해야 하는 등 명절이라는 게 결코 유쾌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라는 것이다. 여성들 이야기다.

하지만 이 명절증후군이란 게 비단 여성들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남성들 역시 그런 속사정 빤히 아는 터라, 아내들 눈치도 살펴야 하고 본가 처가 두루 챙겨야 하니 스트레스가 만만찮다. 출세하고 돈 잘 벌고 그래서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사람이라면 모를까, 고만고만하게 입에 겨우 풀칠하고 살거나 변변하게 내놓을 명함 한 장 없고 선물 꾸러미 하나 마음 놓고 사기 힘든 가장들이라면, 그 딱한 사정을 어찌 말로 다 할까.

긴긴 연휴 기간 해외여행이다 뭐다 해서 신나게 즐기는 사람들도 많지만 한숨 푹푹 쉬며 끔찍한 현실을 다만 견뎌낼 뿐인 이웃들도 많다. 남들 모두 신나고 행복한 것 같은데 유독 내 처지만 초라하고 별 볼일 없다 싶어 삶이 더더욱 아프게 느껴지는,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 겪는 고통 역시 가슴 먹먹한 명절증후군이라고 해야겠다.

명절날 쉬지도, 고향에도 가지 못하고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도 명절증후군에 시달린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소방서 직원들, 경찰, 지하철 버스 업무 종사자 등 평범한 보통 시민들을 위해 묵묵히 일터를 지켜야 하는 사람들 역시 선의의 명절증후군 피해자일 것이다.

무엇보다 명절은 가족 간, 그 중에서도 특히 부부 사이의 좋고 나쁨이 어느 때보다 잘 드러나기도 한다. 부부 금슬이 좋을수록 양가 부모나 형제 자매 등 핏줄들과 두루 잘 지내고 그래서 명절이 그저 고통스러운 의례가 아니라 그들과 더불어 진심으로 행복한 시간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물론 다 그렇지만은 않아서, 죽고 못 사는 사이라는 잉꼬 부부여도 저희들끼리만 호호거릴 뿐 부모 형제는 뒷전인 경우도 많다. 평소 멀쩡하게 잘 지내던 부부도 명절을 앞두고 신경이 예민해져 토닥거리기도 하고, 귀향길 자동차 안에서 한판 붙고, 고향집에서 서로 끙끙 속으로 앓다가 귀성길에 마침내 폭발해 버리기도 한다.

명절 지나 이혼장에 도장을 콱 찍어버리는 부부들도 있다 하니, 가족 간의 정을 확인하는 명절이라는 게 오히려 가정을 깨버릴 수도 있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명절 뒤에, 마음 가득 가족과 고향의 정이 넘쳐나 그야말로 영혼이 충만하면 다행이고, 반대로 뭔가 찜찜하고 울화통이 터지는 일이 있었다면 반드시 풀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심사 뒤틀어진 아내를 달래 뒤탈이 없도록 해야 밥도 얻어먹고 쓸데없이 바가지 긁힐 일도 없을 것이다.

자고로 무슨 일이든 뒤가 중요하다고 했다. 명절을 준비하고 치르는 것 못지않게 뒷마무리 역시 신경 써야 할 일이다. 고향 길 오가느라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 일상으로의 복귀가 어려울 수도 있겠고, 그보다 마음이 불편해서는 가정의 평화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부부의 날 위원회에서, 부부행복을 위해서는 지켜야 할 몇 가지 지혜가 있다고 소개했다. 인내(忍耐)하며 다툼을 피하라. ‘참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칭찬에 인색치 말라. 웃음과 여유를 가지고 대하라. 서로 기뻐할 일을 만들라. 사랑을 적극 ‘표현’하라. 같이 즐기는 오락이나 취미를 만들라. 금연, 절주하고 건강을 지켜라(건강한 부부는 부부관계도 건강하다). 서로 지나치게 의존하지 말라(경제적, 심리적으로 적당히 독립하라). 매년 혼약갱신선언을 하자(이혼할 틈을 주지 말라). 부부교육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하자(투자한 만큼 거둔다).

한가위만 같아라고 했다. 부부 금슬도 가정의 평화도 그와 같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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