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자락을 따라 일렬로 줄지어 세워진 집들이 내려다 보이는 태극마을 전경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정인선 기자] 한국의 산토리니 또는 마추픽추로 불리는 부산 사하구 감천2동 태극마을. 숨 쉴 틈도 없이 일렬로 들어선 각양각색의 집만큼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곳으로 가을을 맞이하러 갔다.

천마산 아래 산복도로를 따라 들어선 산동네 태극마을은 한국전쟁 당시 전국에서 모여든 태극도 신도들이 모여 형성한 마을이라 ‘태극’이란 마을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마을 입구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자 산자락을 따라 형형색색 칠해진 집들이 층층이 세워진 풍경이 레고 블록 같다. 파란하늘과 흰 구름, 일렬로 빼곡히 들어선 아기자기한 집, 저 멀리 국내 최대 수산물 수출입항인 감천항의 조화가 한국의 산토리니나 마추픽추로 비유할 만큼 장관을 이뤘다.

특히 태극마을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더 없이 소중하다. 당시 이곳은 독특한 계단식 집단 주택 양식으로 이상향적인 집단 거주 장소를 추구했다. 지금도 판잣집에서 슬래브집으로 바뀐 것을 제외하면 그 흔적을 그대로 품고 있다.

마을 위에서 마을 풍광을 만끽했다면 이젠 집 사이사이로 난 미로 같은 골목길로 빠질 차례다. 좁다란 골목길은 겨우 한사람이 통과할 정도라 길을 가다 마주 오는 사람을 만날 경우 배려가 요구된다.

신기한 것은 미로 같은 골목 어디로 들어가든 모든 길이 통한다는 것이다. 거대한 벽에 가려져 이웃과 단절돼 있는 오늘날의 모습과는 반대로 서로의 집 계단과 옥상을 길 삼아 소통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진짜 사람 사는 법을 배운다. 또 불편한 행복 속에 살아가고 있는 이곳 사람들의 삶의 애환도 느껴본다.

▲ 전영진 작가의 ‘사람 그리고 새’라는 작품, 집 위에 설치된 구조물로 사람 얼굴을 하고 있는 새, 옥빛 페인트, 빨간 계단과 옆집 벽에 그려진 그림이 한데 어우러져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골목을 누비다 보면 태극마을 곳곳에 불어든 변화의 바람을 느낄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09 마을미술 프로젝트 - 꿈을 꾸는 부산의 마추픽추’ 사업 대상지로 선정돼 마을 구석구석 숨은 예술작품들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마을 정류장에서 조금만 걸어 들어오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전영진 작가의 ‘사람 그리고 새’라는 작품. 이 작품은 집 위에 설치된 구조물로 사람 얼굴을 하고 있는 새를 표현했다.

옥빛 페인트 집 위에 각기 다른 색과 표정을 지닌 새, 그리고 옥상으로 이어진 빨간 계단의 조화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낯선 사람도 반갑게 맞이하며 선뜻 옥상을 내어 준 집주인 이명열(63) 씨는 “예술작품이 설치된 후로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 사진도 찍고 좋아해줘서 덩달아 기분이 좋다”며 “이것을 계기로 동네가 더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마을 주변에는 마을 사람들의 소망을 담은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박은생 작가의 ‘내 마음을 풍선에 담아’라는 작품은 동네 아이들의 소망을 풍선에 담아 제작했으며, 신무경 작가의 ‘달콤한 민들레의 속삭임’에는 민들레 홀씨로 표현된 동네 어르신들의 소망이 담겨있다.

이렇게 부산의 과거, 현재, 미래를 품고 있는 태극마을이 10년이 지나고 또 10년이 지나도 지역 사람들의 생생한 삶을 고스란히 간직하며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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