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과 남한을 잇는 동해선 육로. 대승호 선원귀환에서 이산가족 상봉 제안에 이르기까지 최근 북한이 취한 유화적인 행동이 관심을 끌면서 남북관계 개선이 화두로 등장하고 있는 가운데 차량운행이 끊긴 동해선 육로에 적막감이 감돌고 있다. (연합뉴스)

“고향 가는 날 손꼽아 기다려도 기차표가 없어…”
임진강 망배단 찾는 실향민들 “추석날 가족 더 그립다”

[천지일보=장요한 기자] “고향 가는 기차표도 없어… 평생 불효는 씻을 수 없는 죄에요.”

70~80대 백발의 어르신들이 매년 명절이 되면 노구의 몸을 이끌고 기어이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 망배단을 찾는다.

휴전선에서 남쪽으로 약 7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임진각. 전쟁 길에 잠시 내려온 이후 고향 산천과 부모 형제를 가슴에 묻게 될 줄이야.

남북분단이라는 한국의 비극적인 현실을 상징하는 이곳을 찾는 어르신들은 분단 6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눈앞에 보이는 북녘 땅을 바라보며 구구절절한 망향의 한을 가진 실향민들이다.

손짓하면 잡힐 듯 소리치면 들릴 듯 가까운 곳에 고향이 있건만 가족의 생사도 모른 채 지낸 세월이 자그마치 60년. 이북이 고향인 이들에게 사무치도록 고향이 그리운 때가 바로 설날과 추석이다.

실향민의 망향의 한을 달래주기 위해 통일경모회는 설날과 추석날 임진각에서 망향경모제와 재이북 부조경모대회를 각각 지내고 있다. 추석 경모대회는 지난 1972년부터, 설날 망향제는 지난 1985년부터 시작해 해마다 실향민들이 합동 차례를 지낸다.

▲ 남궁산 통일경모회 회장 ⓒ천지일보(뉴스천지)
통일경모회 남궁산(78) 회장은 “실향민은 망향의 슬픔을 삭힐 뿐 어떻게 하겠느냐”며 “막연하게 임진각 광장 돌기둥에 절하는 것이 전부지만 이것도 안 하면 조상에 대한 불효막심한 죄를 영영 씻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실향민의 마음을 전했다.

특히 남궁 회장은 실향민 1세대(70~80대)는 상당수가 작고한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꿈에서도 그리던 고향과 혈육재회를 환상으로만 간직한 채 실향민이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고 있는 현실 앞에서 그저 인생무상의 씁쓸함을 느낀다”며 “망배단을 찾는 실향민 수가 줄어드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사망률 34% 육박
고령자에게 상봉 기회 돌아가기 힘들어”

남궁 회장의 말처럼 실제 지난 6월 통일부 통계 결과도 나왔다. 조사 결과 1988년부터 올해 3월 말까지 정부 이산가족정보통합센터에 등록된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는 모두 12만 8111명이다. 이 중 33.8%인 4만 3305명이 이미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시간이 갈수록 고령자 비율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3월 말 현재 생존 8만 4806명 가운데도 70대 이상 고령자는 77.5%에 이르고 있어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의 사망률은 앞으로도 더욱 높아질 것으로 우려된다.
고령의 남궁 회장은 “청년이던 내가 세월이 흘러 이렇게 노인이 됐다”며 “부모님이 살아계시지 않겠지…”라고 말끝을 흐렸다.

그는 가족을 버리고 나온 죄책감으로 마음이 무거운 듯 잠시 말을 멈췄다. 남궁 회장은 이어 “고향에 가고 싶어도 못가고 성묘도 못하는 실향민의 심정을 헤아려주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3년째 회장직을 맡고 있는 남궁 회장의 이북 고향은 강원도 이천(伊川)군 이천면 비성리이다. 이북에는 아버지와 어머니, 남동생 2명, 여동생 3명이 남아 있다.

그는 특히 “이산가족 면회뿐만 아니라 통신(편지)을 통해서라도 가족의 생사를 알고 싶다”며 “가족이 살아 있는데도 만나지 못하는 세상이 어디 있느냐”며 비통해했다.

▲ 김해원 통일경모회 홍보이사 ⓒ천지일보(뉴스천지)
남궁 회장과 함께 일하는 김해원(59) 씨는 통일경모회 홍보이사다. 실향민 2세인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와 남궁 회장과 고향이 같다고 했다. 고향 땅을 밟지 못하고 눈을 감은 아버지의 한이 마음에 서려있는 듯 통일의 염원이 강했다.

김 홍보이사는 “실향민의 소원이 죽기 전에 고향 땅 밟아 보는 것 말고 뭐가 있겠느냐”며 “이산가족 상봉을 하고는 있지만 현재 겨우 몇백 명씩 진행한다. 살아 있는 실향민에게 차례가 다 돌아오지 않는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전해다.

그는 “실향민이 자유롭게 남북을 오갈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고대한다”며 통일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드러냈다.

통일은 언제 올까. 온다고 해도 너무나 먼 얘기는 아닐까. 의문 어린 기자의 질문에 김 홍보이사는 “북한 전문가도 아니고 학자도 아니지만 통일은 곧 된다”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답했다.

하지만 그는 우리나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국방 모든 분야에서 ‘통일’을 가장 염두에 둬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남궁 회장은 지금 젊은 세대의 통일관에 대해 걱정스러워했다. 그는 “남북이 하나였는데 이처럼 갈라진 것은 비정상이다. 통일은 반드시 빨리 이뤄져야 한다”며 “젊은 세대에게 통일에 대한 교육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일경모회는 40여 년이라는 꽤 오랜 세월동안 유지되고 있다. 남궁 회장은 “지난 2008년 돌아가신 오훈칠 회장님의 희생 덕분”이라며 “넉넉하진 않지만 실향민들의 정성 어린 헌정금을 비롯해 통일부와 경기도의 후원이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향민의 간절한 바람처럼 하루라도 빨리 통일이 돼 임진각 망배단의 경모대회가 끝이 나고 고향 땅을 밟고 가족과 함께 하는 명절날이 되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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