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국대 사회교육원 가요전문지도사 지도교수 ⓒ천지일보(뉴스천지)


절‧교회‧성당 어디든 노래로 봉사할 수 있는 곳 찾아다녀 

[천지일보=이지수 기자] 지난 10일 동국대 정각원에서 만난 임부희 교수. 멀리서도 한눈에 보이는 환한 미소로 성큼성큼 다가오는 모습이 ‘행복한 사람’을 연상시킨다.

무엇이 저리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일까. 현재 그는 동국대 사회교육원 가요 지도자 지도교수다. 또한 노래로 전국을 다니며 봉사하는 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임 교수는 어릴 때부터 노래를 잘했다고 한다. 각종 대회에 나가면 매번 상을 받고 무대경험도 많이 쌓았다는 그는 1963년에 그 실력을 인정받아 아세아 레코드에 스카웃 돼 가수의 길을 본격적으로 걷는 듯 했다.

“가수가 되면 지방공연도 많이 다녀야 한다는 말에 아버지께서 반대 하셨어요. 내 딸 딴따라 못시킨다고….” 임 교수의 노래실력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것이다. 하지만 보수적이며 유교적이신 아버지셨기에 딸이 가수가 되는 것을 반대하셨다.

어쩔 수 없이 그는 가수의 꿈을 잠시 접을 수밖에 없었다. 충청도 분이신 그의 아버지는 5살 때 천자문을 떼시고 풍월을 아시는 분이셨으며 그의 어머니는 신실한 불자셨다. 임 교수는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불자가 된 것.

그의 어머니는 늘 자식들에게 불심을 가르쳤다고 한다. 어머니 가르침 때문인지 어린 시절부터 그는 자신이 먹을 것이 부족한데도 거지에게 밥을 나눠 줄 정도로 베푸는 일에 행복을 느꼈다고 한다. 남을 위해 봉사하는 지금의 임 교수의 모습이 그때부터 움트기 시작한 것일까.

“모두가 서로 나누며 베풀고 배려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자기 일속을 챙기기에 바쁜 사람들 모습을 보면 쓸쓸할 때가 많아요.”  

▲ 정선 프란치스꼬의집 봉사 공연(제공:임부희 가요캠프)
그는 무엇보다 인성과 사람 됨됨이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일까. 사람을 대할 때 낮은 자세로 겸손히 대하는 것이 몸에 배어있는 듯하다.  

임 교수는 불심을 바탕으로 교소도, 장애인기관, 불우한 노인들을 위해 열심히 봉사하고 있다. 그가 다녀간 곳은 늘 웃음꽃이 피고 긍정의 에너지를 품어낸다. 또한 불자라고 해서 불교에 관련된 봉사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내종교가 소중하면 다른 사람의 종교도 소중하게 생각해야 된다고 봐요. 저는 종교에 매여서 봉사하지는 않습니다. 절이든 교회든 성당이든 제가 노래로 봉사할 수 있는 곳은 어디든 희망과 용기를 심어주러 갑니다. 봉사는 제 마음의 기쁨이에요.”

임 교수는 늘 열정이 넘친다. 매년 1~2회 서울 소년원과 순천교도소에 위문공연을 가며 탑골공원 무료급식에 동참한다. 뿐만 아니라 전국에 여러 교도소나 정신대 할머니 연꽃마을, 소록도 등 전국을 다니며 소외된 주변이웃을 위해 20년째 봉사하고 있다. 그는 1991년 SBS TV개국 전국가요경연대회 연말결선 대상 수상을 하며 가요계에 데뷔했다.

이후 TV다큐 이것이 인생이다 등 방송에 다수 출연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 잠시 접었던 가수의 꿈을 다시 이룰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다. 하지만 돌봐야 할 가정이 있는 주부이기도 했기에 가수의 길로 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남편 사업이 잘 안 되기도 했고 여러 지방에 공연도 다녀야 하는데 그것을 남편이 좋아 하지 않았어요. 저도 남편이 반대하는 일을 하고 싶지도 않았고요.”

가수활동을 하고 싶은 바람도 컸지만 그것이 가족을 뛰어 넘지 못할 만큼 임 교수는 가정을 사랑했다. 지금도 기회가 되면 가요무대 같은 큰 무대에도 출연하며 활발히 가수활동을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임 교수를 더 행복하게 만들고 보람을 주는 일은 후배를 양성 하는 일이라고.

현재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에 동국대 사회교육원 ‘임부희 가요캠프’ 수업이 진행된다. 벌써 9년째 맡아오고 있는 수업이다.

▲ 국제문화대학원(KICU) 석사 학위 수여식에서 임 교수 (제공:임부희 노래캠프)
그의 수업에는 보통 70여 명이 수강하고 있다. 임 교수는 올해 국제문화대학원 대학교 이미지메이킹 경영교육 석사 논문이 통과돼 박사과정이 남아 있었지만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란 어려운 일.

박사과정 학업과 가요 지도자 수업시간이 겹쳐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할 상황이 온 것이다. 임 교수는 과감히 박사과정을 잠시 내려놓았다. “제 수업을 수강하는 후배들을 외면할 수 없었어요. 박사가 되는 것 보다 저는 후배 양성하는 일이 더 좋고 보람 되요.”

그는 정도를 가고자 하는 마음, 정직함과 강인함 그리고 선비기질은 아버지를 닮았고 어머니의 자비로움과 인내, 배려심을 물려받았다고 한다. 가끔 울적할 때면 경기도에 있는 부모님 산소를 찾아가 “착하고 예쁘고 아름답게 낳아주셔서 감사해요.”라고 하며 마음을 달랜다는 임 교수. 그러면 마음이 한결 놓여 더 열심히 주어진 일을 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그는 지금까지 걸어온 삶을 노래에 담아 가슴으로 부른다. 화려한 가수보다 아버지의 딸로 한 사람의 아내로 훌륭한 어머니로 살았던 그의 인생이 담겨져 있어 듣는 사람의 심금을 울린다. 그리고 무엇보다 불심이 바탕이 된 남을 위한 착한 심성 때문에 그의 노래는 사랑받을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 가난하지만 남을 도와주며 살자’ 라는 생각을 늘 해요. 어차피 갈 때 빈손으로 가잖아요. 욕심 없어요. 사는 날까지 지금처럼 보람 있게 살고 세상에 필요한 존재로 살고 싶어요.” 마지막까지 임 교수는 특유의 환한 미소로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임부희 교수
1991년 SBS TV개국 전국가요경연대회 연말결선대상
사)한국음악저작권협회위원
사)한국연예예술인협회 창작위원회 여성위원장
사)대한가수협회위원
사)대한불교법사회법사/법무부 종교지도위원
서울특별시 생활체육협의회
남북문화교류협회 예술분과 부위원장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 총동창회 여성위원장
사)한국대학노인복지사 1급(사회복지사)
동국대학교 사회교육원 가요전문지도사 지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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