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용 시민주권 홍보기획위원장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 딸의 외교부 특채 파동으로 외교부가 온통 쑥대밭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최장수 장관으로 잘 나가던 유 장관이 사표를 썼는가 하면 유사한 특채비리가 잇달아 터져 나오고 있다.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이다.

현직 기자 시절에 외교부를 출입하고 외국 특파원을 했던 필자는 예나 지금이나 외교현안과 외교부의 움직임에 관심이 많다. 이번에도 일이 터지자마자 시선이 갔다. 왜 그 잘났다는 엘리트들이 시글시글한 외교부에서 이런 사태까지 일어났을까?

곰곰이 생각하지 않아도 답은 금방 나왔다. 역시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외교부를 출입하던 시절부터 뇌리에 박혀있는 외교부 ‘컬처(외교부 사람들은 대화 중 영어단어를 섞어 쓰길 좋아하는데 이 경우에도 문화가 아니라 컬처라고들 표현한다)’가 단박에 떠올랐다. 외교부만의 특유한 컬처는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선민(選民)집단의식’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박정수 씨가 장관이던 1998년도 5월쯤 난 처음으로 외교부 출입기자로 발령받았다. 사회부처만 10여 년 출입하다 정치부로 옮기면서 처음 가게 된 부처여서 걱정이 앞섰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외교부는 ‘특종해도 1면 톱, 낙종해도 1면 톱’이란 말이 나돌 정도로 굵직굵직한 외교현안이 많았다. 사소한 기삿거리라 해도 국가적으로는 큰 의미가 있는 사안이 대부분이어서 웬만하면 신문의 표지면인 1면 기사로 처리가 됐던 것이다.

외교부를 오래 출입해 외교통이라 불리던 노진환 선배(전 서울신문 사장)에게 자문을 구했다. 노 선배는 자신이 쓴 <외교가의 사람들>이란 책과 ‘외교부 인사정책’을 주제로 모 월간지에 기고한 글을 한 편 주며 읽어보라고 했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외교부에선 인사라인을 모르면 취재가 안 된다. 누구는 어느 장관 라인이고, 누구는 어느 간부 라인인지를 잘 챙겨야 한다.”

책과 기사를 보니 어느 정도 감이 잡혔다. 외교부에서 전설처럼 내려오는 ‘DJ사단(김동조 장관을 축으로 한 집단)’ ‘DJ라인(박동진 장관 라인)’ ‘YS라인(김용식 장관 라인)’ 등도 알게 됐다. 또한 ‘청비총(靑秘總)’이라는 암호 같은 단어도 접했다. 청비총이란 ‘청와대, (장관)비서실, 총무과(인사담당)’의 줄임말로 초급 및 중급 외교관 시절에 반드시 이곳을 거쳐야만 나중에 적어도 G7(외교부의 7개 차관보급 보직)까지 승진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외교부 간부들의 경력을 따져보니 일리가 있었다. 외교부의 꽃이라는 북미국과 동북아국 간부는 거의가 청비총 출신이었다.

어느 부처이든 인사와 관련한 잡음과 구설수가 없진 않지만 외교부가 유난한 이유가 있다. 외교관들은 초년시절에 북미국 등에서 기본기를 다지고 미국이나 일본 공관에서 근무하지 않으면 일단 주류에서 제외된다. 또한 해외 공관 인사의 경우 어느 지역, 어느 나라로 가느냐에 따라 본인은 물론이려니와 가족의 운명도 결정난다. 특히 교육환경이 열악한 제3세계 국가로 발령나면 자식농사까지 망칠 수도 있다.

멋진 연미복에 나비넥타이를 매고 카페트 깔린 만찬장에서 고급 와인과 함께하는 우아한 파티외교는 선진국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아프리카 등지로 부임하면 말라리아 등 풍토병 예방주사를 맞아야 한다.
그래서 매년 봄 가을 인사철이면 외교부 청사에선 환호성과 곡소리가 동시에 울려 나올 수밖에 없다. 또한 외교부는 영사직 등을 제외하곤 거의 예외 없이 외무고시 출신이다. 외교부에서 외무고시 기수는 군의 사관학교 기수나 법조계의 사법시험 기수 이상으로 중요하다.

어느 조직이든 조직원들이 본연의 업무보다 인사에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면 그 조직은 이미 침체와 부패의 병균이 좀 먹게 마련이다. 이번 외교부 파동도 그렇다. 장관이 사무관 인사까지 챙기는 식으로 인사전횡이 가능하고, 영어 잘하는 자녀들(외교관 자녀들이 외국어 잘하는 건 당연하다)이 다시 외교관이라는 가업을 잇는 게 그간의 컬처였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등 4강의 외교 각축전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는데도 우물 안 개구리처럼 내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한 이런 외교부는 이참에 환부를 발본색원해야 한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