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 의원 원장

외교부 장관의 딸이 외교부 특채 시험에 합격한 문제로 시끌벅적하다. 최근 친(親)서민과 공정성을 강조한 MB 정부로서는 여간 곤혹스런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급기야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장관의 처신을 꾸짖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사건과 연관된 언론 보도를 지켜보면서 필자가 가장 먼저 떠올렸던 단어는 ‘부끄러움(Shame)’이다. 어린 자녀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움을 탈 때 부모들은 안타까워한다. 그러면서 “뭐가 그렇게 부끄럽니? 뒤에 숨지 말고 당당하게 네 의견을 말해 봐”라고 가르친다.

부끄러움은 아무래도 부정적 의미가 많이 느껴지는 단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부끄러움은 본래 자신을 성찰하고, 남을 의식하거나 배려하는 차원에서 느껴지는 인간의 본성이다. 따라서 부끄러움은 오히려 긍정적 의미가 많이 있는 단어라고 할 수 있다.

정신과 의사인 필자에게 찾아오는 많은 부끄럼쟁이들은 사실 착한 사람들이다. 부끄러움을 지나치게 타서 남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잘 발표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가에 신경을 많이 써서 불안해하는 환자들에게 ‘사회적 불안 장애(Social Anxiety Disorder)’라는 진단이 내려진다. 물론 정신과 약물치료 및 전문의와의 상담치료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반대 경우는 어떠한가?

부끄러움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남의 이목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이득을 충족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사람들은 정신과 병원을 찾지 않는다는 데 있다. 또한 남들 평가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기준대로만 일을 처리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독불장군인가 아니면 자기애적인 나르시시즘에 빠진 자들인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점은 자신이 수장으로 있는 조직에 자신의 자녀를 들어오게끔 한다는 자체다. 그것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것이라는 예상을 전혀 못 했을까. 아니면 정부부처를 마치 자신의 회사처럼 여겨서 ‘장관=사장’이라고 인식했을지도 모른다.

필자는 앞으로 사회적 불안장애 환자들에게 치료 방침을 바꾸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여태까지는 “다른 사람들을 너무 의식하지 마세요. 그들은 내가 느끼는 것만큼 나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좋지 않게 생각하면 좀 어떻습니까? 남에게 인정과 칭찬을 받으려는 마음을 버리세요”라고 조언해 줬다.

그러나 이제 이렇게 말해야 할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건강한 반응입니다. 그들의 생각을 늘 살펴보세요. 다른 사람들이 나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왜 그럴까 그 이유에 대해서 성찰한 다음에 나를 변화시켜 보십시오.” 부끄러움이 지나쳐서 병이 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부끄러움이 너무 없어서 비상식적인 언행을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세상은 참으로 요지경이다.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들에게 부탁한다. 제발 ‘부끄러움’의 감정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어릴 적 선생님이나 어른들 앞에서 느꼈던 부끄러움, 그리고 친구들에게 잘못했을 때의 부끄러움을 되살리자. 권력과 지위에 취해서 누구 앞에서나 당당하고 거리낄 것 없는 마음가짐을 경계하자. 부끄러움은 창피하고 못난 것이 아니다.

부끄러움을 알아야 인격적으로 성숙해질 수 있다. 또한 부끄러움은 잘못된 길로 빠져드는 것을 예방해 준다. 따라서 높은 분들이 부끄러움을 느껴야 아랫사람들이 신명나게 살 수 있다. 이제부터 ‘건강한’ 부끄러움에 대해서 열심히 환자들에게 설명하고 강조하는 것이 필자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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