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이사벨라 버드 비숍 (Isabella Bird Bishop. 1831~1904)은 영국 잉글랜드 출신의 여행가이자 지리학자, 작가였다. 선천적으로 병약했지만 아버지의 가르침으로 시대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평생 여행가로 살며 영국 빅토리아 시대 최고의 여성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녀는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여성 단독 미국 여행을 시작으로 평생 길 위의 삶을 살았다. 여행은 병으로 인한 고통을 잊기 위한 방편이자 자유로운 영혼이 마음껏 기지개를 켜는 삶의 원동력이기도 했다.

살기등등한 사무라이들의 위협을 무릅쓰고 감행한 일본 여행, 무슬림처럼 두건을 뒤집어 쓰고 돌아다녀야만 했던 페르시아, 영국 여인이란 이유로 무차별적으로 가해진 중국 사람들의 폭행 등 길 위의 그녀에겐 숱한 역경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결코 물러서는 법이 없었으며 늘 당당했고 또한 용기를 잃지 않았다. 오히려 낯선 이들에 대한 연민과 애정, 배려 등 인간적인 면모는 오히려 더 빛이 났다.

그녀는 1894년 64세의 나이에 사진 찍는 것을 새로 배우고 극동의 나라 한국과 중국을 여행할 계획을 세웠다. 나이는 그녀에게 여행가이자 모험가인 그녀에게 아무런 장애도 되지 않았다. 오히려 세상을 굽어보는 여유와 삶에 대한 깊은 혜안, 학자로서의 높은 안목 등이 어우러져 여행을 더없이 풍요롭게 만들었다.

그녀가 처음 조선에 입국한 것은 1894년 겨울. 러시아와 일본을 거쳐 조선에 온 그녀는 한강을 거슬러 오르며 조선의 내륙을 살폈고 금강산과 그 이북 지역을 여행했다. 청일전쟁 때문에 돈과 짐을 모두 잃고 쫓겨나다시피 조선을 떠나기도 했지만, 1897년까지 조선을 모두 네 차례 방문했고 9개월간 머물렀다.

그녀는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이란 책을 통해 조선의 풍속, 종교, 서민 생활, 궁중 모습, 여성의 삶 등을 세상에 알렸다. 그녀는 조선을 러시아, 중국, 일본의 가운데 놓여 있는 ‘셔틀콕과 같은’ 신세로 보았다. 그러나 ‘은자의 나라’에 살고 있는 조선 사람들을 ‘길이 번영할 민족’이라고 기록하기도 했다.

책에는 그녀가 보고 느끼고 체험한 것들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100여 년 전의 우리 삶이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궁핍하고 초라했으며, 그래서 벽안의 노여인 마음에는 연민이 넘쳐난다. 그 중 몇 구절, 이런 게 나온다.

‘서울 중앙 관청이 부정부패의 중심지이긴 했지만, 모든 지방 관청은 보다 작은 규모로 중앙 관청의 부정부패 행위를 그대로 답습했으며 부정직한 관군과 게으른 관리들의 횡포와 가렴주구는 핵심적인 세도가의 수입을 살찌게 만들었다.’

‘지방에는 관료주의가 만연하고 있다. 수없이 많은 집권 남용이 자행될 뿐만 아니라 모든 중앙 정부 체계는 직권 남용의 핵심부로서 밑도 끝도 없는 부패의 바다여서, 모든 산업에서 그 활력을 빼앗아 가는 착취 기관일 뿐이다.’

‘관직과 재판의 판결은 마치 상품처럼 사고 팔 수 있으며 정부는 빠른 속도로 쇠퇴해 있기 때문에 오직 뇌물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원리가 되고 있다.’

‘조선 사람들의 힘은 휴지 상태이다. 상위 계층은 사회적 의무의 부조리에 마비되어 있으며 아무런 일도 않으며 일생을 보낸다. 중간 계층에게는 출세의 길이 열려 있지 않다. 중간 계층의 에너지를 전환시킬 수 있는 전문 직업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위 계층의 사람들은 매우 충분한 이유들로 인해 늑대가 대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있을 정도 이상으로는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

100년 전의 기록이 아프게 와 닿는 것은, 그것이 여전히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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