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겸 동국대 교수 

 

과거에 체면을 목숨보다 더 중요시했던 적이 있었다. 체면이란 사전적으로는 남을 대하는 데 있어서 떳떳한 도리나 얼굴을 말한다. 이러한 체면과 연결된 용어가 명예라고 할 수 있다. 사전에서 명예는 세상에서 훌륭하다고 인정되는 이름이나 자랑, 또는 그런 존엄이나 품위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렇게 용어의 정의를 보면 체면은 스스로 평가하는 것이고, 명예란 다른 사람에 의한, 사회에서 평가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양자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고 또한 인격의 한 부분을 이룬다고 볼 수 있다.

인격이란 인간으로서 가지는 품격을 말하는데, 우리나라 최고규범인 헌법에는 인격에 관해 명문의 규정은 없다. 그렇지만 헌법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대해 규정하고 있고 인격의 자유로운 발현을 보장하는 행복추구권을 규정하고 있어서 인격권은 이 조항으로부터 나온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이면 누구나 누려야 할 일반적 인격권은 개인의 사생활 영역을 비롯해 스스로 독자적인 생활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기본조건을 보장하는 기본권이다. 이러한 일반적 인격권에는 사생활의 비밀유지와 자유로운 형성, 개인의 명예보호, 성명권, 초상권 등이 포함된다.

헌법재판소는 자신의 결정에서 일반적 인격권은 헌법 제10조인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에서 도출된다고 했다. 또한 일반적 인격권에는 개인의 명예에 관한 권리도 포함될 수 있지만, 명예란 사림이나 그 인격에 대한 사회적 평가 즉 객관적·외부적 가치평가를 말하는 것이고 단순히 주관적·내면적인 명예감정을 포함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즉 명예란 사람이 사회생활을 통해 형성된 개인의 인격으로 사생활의 영역에서 형성된 인격은 명예가 아니라 보호돼야 할 사생활 그 자체라는 것이다.

명예는 개인의 인격에서 사회생활을 통해 형성된 사회적 인격이라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다. 사람에게 사회적 인격인 명예가 훼손되면 사회생활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헌법 제21조 제4항에서는 언론·출판이 타인의 명예를 침해해서는 안 되고, 침해한 경우 피해자에게 손해배상청구권을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형법에서는 명예훼손죄를 규정해 언론이나 출판 등의 방법으로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명예와 관련해 모든 국민이 동일한 범위의 명예를 갖는 것은 아니다. 정치인, 연예인 등 사회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의 경우, 그들의 사회적 활동을 통해 형성된 인격은 이미 대부분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에 일반 국민과 동일한 수준으로 보호될 수는 없다. 물론 사회적으로 이미 알려진 공인(公人)이라고 해도 내적 영역이나 사적 영역은 보호돼야 한다. 그래서 사회적 활동을 통해 형성된 공인의 인격은 국민의 알 권리와 그 중요성을 저울질해 판단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최근 발생하고 있는 정치인, 고위공직자들의 명예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은 먼저 사실여부가 명확하게 밝혀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실들이 그들의 명예에 관한 것인지 판단한 후 국민의 알 권리와 그 중요성을 비교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사적 영역까지 그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왜냐하면 순수한 사적 영역은 보호돼야 할 프라이버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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