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원내대표 故 노회찬 의원의 명복을 빕니다.’

‘정의(正義)’, 정의라는 단어의 실체가 되는 삶을 살기 위해 뿌리내리기 힘든 척박한 땅에서 나름의 애를 쓰다 가신 고인의 삶과 정신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의혹으로만 있던 경공모(경제적공진화모임, 대표 드루킹)로부터의 금품수수 의혹을 인정하며, 받은 돈은 뇌물은 아니지만 정치자금법이라는 현행법에 위배되며 정의당의 명예를 실추시켰으며 나아가 국민들에게 부끄러움을 가눌 길 없어 극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당시의 심정이 담긴 그의 유서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먹먹하게 했다.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자신의 과오를 그 누구에게도 돌리지도 원망하지도 않았다. 모든 잘못은 자신에게 있다는 용기 있는 고백은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최고의 학부과정을 밟은 고인으로서는 고상한 삶도 가능했겠지만 늘 약자 편에서 약자와 함께 동고동락하며 살아온 그의 인생역정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부인하지 못할 것이며, 나아가 고인의 죽음에 애도의 물결이 끊이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털어 먼지 나지 않는 사람 없다’는 고담처럼 우리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다. 경·중의 문제일 뿐 범인(凡人)이라면 피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가 바로 우리며 나아가 우리의 자화상이다.

‘나는 정의, 너는 적폐’라는 신조어가 그 어느 때보다 범람해 있을 즈음에 각종 촌철살인 등으로 정의와 정직의 심벌처럼 여겨왔던 한 정치인의 비보이기에 더욱 더 충격효과를 주는 것은 아닐까 싶다.

이 사건을 통해 정치인 아니 그 누구라도 정의와 진실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교훈을 얻게 한다.

가족은 물론 가까운 친인척 내지 정치적 동지 나아가 대부분의 국민들은 금번 흠결에 대해 ‘옥(玉)의 티’로 여길 것이며, 그 생각은 아마 합리적일 것이다. 고담(古談)이나 경(經)에는 “남의 눈에 티는 보면서 자기 눈에 들보는 왜 보지 못하느냐”는 질책성 교훈이 있다. 고인도 씻을 수 없는 실수였음을 안타까운 심정으로 인정했고, 그 책임을 누구에게도 돌리지 않았으니 장부의 마지막 모습을 우리는 목도한 것이다.

그가 걸어온 무거운 길에서 우리는 그의 마지막 티를 보게 됐고, 어찌 보면 인간이기에 가질 수 있었던 아름다운 티로 승화시켜보고 싶은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죄 없는 자는 돌로 치라” 했듯이, 누가 누구에게 잣대를 댈 수 있겠는가.

요즘 이만큼 용기 있고 자신에게 엄중한 잣대를 들이대는 정치인을 아직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쉬운 것은 그가 간 마지막 선택이 옳았다고 하지는 못하겠다.

고인의 안타까운 죽음을 통해 그의 지나온 삶이 자신과의 싸움이었고 얼마나 고독하고 외로운 길이었을까를 짐작해 보게 된다.

다만 아쉬운 것이 있다면 정의에 대한 가치다. 그가 가지고 목숨처럼 지키려했던 정의에 대한 가치가 과연 얼마만큼 객관적이었고 합리적이었는가는 후대가 다뤄봐야 할 대목이 아닌가 싶다. ‘정의’라는 단어야말로 아무데나 적용돼선 아니 되며 참으로 정의로워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이 땅에는 이분법 즉, 나 외는 모두가 적이 돼야 하는 정의보다는 합리적이며 이치적인 생각으로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 될 때 고인의 죽음이 아깝지 않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생과 사의 기로에서 처절했을 고인의 심정을 생각한다면 책임 운운하며 또 다른 정쟁의 산물이 되게 해선 더더욱 안 될 것이며, 고인을 두 번 죽이는 모독이 될 것이다.끝으로 드루킹 특검 수사의 중요성을 한층 고조시키는 계기가 되어 명명백백 진실을 밝혀 내는 촉매제가 되는 게 고인의 유지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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