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탓하지 말고, 자기 인생에 대해 주체적인 태도 갖자”

▲ 법륜스님. ⓒ천지일보(뉴스천지)
“모든 괴로움은 나의 무지 때문에 일어납니다. 눈을 안으로 돌리십시오. 그러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눈을 안으로 돌이키는 노력’이 기도입니다.” 법륜스님이 최근 펴낸 기도의 지침서 <기도 내려놓기> 머리말 내용 중 일부다.

더위가 한풀 꺾이고 바람도 제법 시원하게 불 때가 됐지만, 때마침 내리는 비와 삼복더위를 방불케 하는 불볕이 더해져 거리는 다니기조차 힘들었다. 법륜스님(사진)을 만나 시원한 사무실에서 인터뷰할 것을 기대하며 더위를 참고 서초동에 있는 평화재단 사무실로 발길을 옮겼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사무실은 더웠다.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았다. 그 순간 기자는 부끄러워졌다. 법륜스님과 사무실에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마음과 정신으로 일하고 있는지 직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북한동포가, 제3세계의 이웃들이 지금 굶주리고 고통받고 있는데 사무실에서 편하게 있을 수 없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재)정토회 이사장, (재)평화재단 이사장, (사)한국 JTS 이사장, (사)좋은벗들 이사장, (사)에코붓다 이사장, 죽림정사(전북 장수) 주지 등이 법륜스님의 공식 직함이다.
법륜스님과 2시간이 넘는 인터뷰를 하며 이 직함들이 겉으로만 드러나는 감투나 명예가 아닌 23년간 평화와 화해의 메신저로서 이웃과 세상을 위해 봉사해 온 발자취이며 소명임을 알 수 있었다.

불교와 하나된 삶
스님에게 불교는 ‘나이가 들어서 단순히 선택한 종교’와는 다르다고 한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불교에 입문한 이래로 지금껏 불교 활동으로만 평생을 살아왔기에 불교는 스님 삶의 전부가 됐으며 불교와 스님은 일체가 됐다고 한다.

불교가 사회로부터 평판이 안 좋을 때는 스님 자신에 대해 평판이 안 좋은 것 같고 스님이 잘못 살아온 것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1970~80년대는 기독교가 급속히 성장하고 불교는 상대적으로 위축된 시대였다. 스님은 이런 불교 현실에 대해 우려하며 특히 젊은이들의 관심사인 사회참여, 민주화 과정에 불교가 참여치 못하면 젊은이들이 불교에 실망해 불교가 외면당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노동·농민·통일운동 등 사회의 일정한 역할을 불교가 해야 하는데 스님이 보는 관점에서는 불교가 그 역할을 제대로 못 했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런 면에서 스님은 비판의식이 강했다고 한다.

스님은 답답한 나머지 문경 봉암사의 조실스님이신 서암스님을 찾아가 불교계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하소연했다고 한다. 법륜스님의 말을 다 듣고 난 큰스님은 “여보게, 어떤 한 사람이 논두렁 밑에 앉아서 그 마음을 청정히 하면 그 사람이 중이라네. 그곳이 절이야. 이것이 불교라네”라고 말씀하셨단다. 그 말을 들은 법륜스님은 “머리 깎고 먹물 옷 입은 사람이 스님이고, 기와집이 절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법륜스님은 어리석은 자가 ‘허공의 꽃, 환화(幻化)’를 꺾으려 하는 것처럼 자신도 “스님이 아닌 자를 스님이라 했고, 절이 아닌 곳을 절이라 했으며, 불교가 아닌 것을 불교라고 했었다”며 “이를 계기로 크게 자각하게 됐고 우선 나부터 불법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불교를 비판하고 변화시키는 관점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는 스님은 “첫 번째는 잘못된 것을 비판하고 타파하며 새로운 것을 세우는 것이고, 두 번째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다른 사람이 따라 배울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며 “젊을 때는 주로 첫 번째의 입장에 서게 되는데 서암 큰스님의 가르침을 받은 후엔 두 번째 방법으로 가게 됐다”고 전했다.

◆ 정토회와 평화재단
정토회를 설립할 때 불교계에서는 ‘조계종에 있는데 왜 다른 단체를 만드는 것일까’하는 의구심도 있었지만 스님은 ‘나부터 새로 시작해 보자’는 마음으로 정토회를 만들었다고 한다. 정토회가 특정한 날짜를 정해놓고 시작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불교에 창조적인 새로운 모델을 만들고 나부터 수행·봉사·사회활동을 해야겠다는 각성을 하며 정토회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정토(淨土, 부처가 있는 깨끗한 국토)’란 말을 처음 쓴 것은 1988년도라고 스님은 기억했다. 1988년 정토포교원과 한국불교사회교육원·한국불교사회연구소를 설립했으며 <월간정토>도 발간했다.

그 후 사회교육원은 ‘에코붓다’로, 사회연구소는 ‘평화재단’으로 다시 태어났다. 1996년도에는 국제기아·질병·문맹 퇴치를 위해 ‘한국 JTS’가 설립됐으며, 1999년도에는 남북 화해, 탈북난민 인권개선 등을 목적으로 ‘좋은벗들’이 설립됐다.

또한 스님은 1989년도에 문경 봉암사에서 부목(負木, 밥하고 나무하며 불을 때는 일을 하는 절의 일꾼)으로 살면서 ‘문경정토수련원’을 설립했다. 수련원은 그동안 가건물로 운영되다 신축돼 올가을 정식 개원할 예정이다.

2004년에는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정착과 통일 정책을 모색하는 민간연구재단 ‘재단법인 평화재단’이 설립됐다.

스님은 “평화재단은 우리나라가 이상적인 사회로 가는 데 필요하다고 판단해 정토회의 재정지원을 통해 설립했다. 하지만 종교적인 목적은 털끝만큼도 없다”며 “이사들도 종교와 무관하며, 원장님도 가톨릭 신자”라고 강조했다.

◆ 국가발전 위해 평화통일 절실
스님이 가장 힘을 집중하고 비중을 두고 있는 것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문제이다. 스님은 “강국이 되기 위해선 어느 정도 규모의 국토나 인구가 있어야 한다. 통일이 이루어져야 우리나라가 국토·인구 등으로 볼 때 프랑스·영국·이탈리아와 경쟁할 수 있게 된다”며 “통일은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물론 국가의 비약적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통일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이어 “세계는 지금 미국과 중국의 G2 경쟁 체제로 가고 있는데 우리가 북한을 너무 압박하면 북한은 중국에, 한국은 미국 쪽으로 붙을 수 있다. 그러면 분단이 고착화되고, 통일은 요원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통일을 위해선 북한에 포용정책을 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완전한 통일을 이루기 전이라도 유럽연합처럼 남과 북이 경제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통일에 대한 비전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정부의 대북정책은 통일정책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런 점을 정부와 대통령에게 설득해야 하는데 할 수 없는 것이 어렵고 답답하다. 우리나라가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방향이 보이는데도 그것을 실현할 도구가 없다는 점에서 어려움을 겪는다”고 토로했다.

이어 “인도적 지원 시 정부는 절차를 간소화하고 신속히 처리해주며, 북한에서는 지원된 물품이 어디에, 어떤 목적으로 사용됐는지, 그리고 그 사용 결과에 대해서도 투명하게 밝혀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며 남북 합의를 이뤄 통일의 프로세스를 진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일의 중요성을 강연·교육 등에서 얘기하고 있으며, 정치인에게도 강조하고 있다”며 “지금 동아시아는 힘의 균형이 바뀌고 있으며 정부가 이런 문제를 자각할 수 있도록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하는 점이 연구과제”라고 덧붙였다.

강연하고 설법하는 일은 마땅히 해야 할 본분이라는 스님은 “정리하자면 평화통일과 주변의 어려운 나라 도와주는 일, 4대강 문제에 대한 국민적 합의점을 어떻게 찾아내어 국민통합을 이룰까 하는 것이 관심사”라고 강조했다.

북한 신종플루 약품지원 ‘보람’
현재 추진하고 있거나 추진 계획 중에 있는 일을 묻자 “천안함 사태 이후 민간차원에서 하던 북한 식량지원마저 끊겼다”며 “5개 종단(불교 개신교 가톨릭 원불교 천도교)의 종교지도자들이 인도적인 차원에서 북한에 식량지원 및 방북을 계획하고 있고 정부에 지속적인 요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님은 “북한의 홍수피해도 도와줘야 하는데 정부의 허락이 안 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정부가 허락하도록 요구할 것”이라며 더불어 북한을 보다 효율적인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북한에 비료를 지원하는 일을 예로 들며 비료를 통해 증산된 식량의 일부를 절반으로 나누어 반(半)은 농민에게 주고 그 나머지는 탁아소 등에 보급하고 남을 경우 탄광에 보내 석탄과 교환해 교환된 석탄은 탁아소 난방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며 “이와 같이 북한 내에서 재생산이 될 수 있는 효율적인 시스템 방식으로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외에도 아시아 빈곤국가 지원도 필요하다. 현재는 인도 필리핀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캄보디아 등 5개국을 지원하고 있으나 라오스 미얀마 몽골 네팔 방글라데시 등 나머지 아시아의 빈곤국가에도 지원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스님에게 특별히 기억에 남거나 보람이 있었던 일을 질문하자 “지난번 ‘신종플루’가 북한에서도 발생했었다. 좋은벗들에서 먼저 이 사실을 알렸고 이후 언론이 보도하자 기사를 본 이명박 대통령이 ‘북한에 약품을 지원해 주면 안 되겠느냐?’며 북한에 약품을 보낼 의사를 밝혔고 북한도 받겠다고 했다. 그래서 신종플루 치료약을 북한에 보내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었다”고 사연을 소개했다.

“보통 좋은 벗들에서 북한 소식을 전할 때 북한에서 ‘거짓말이다’라는 반응을 보이는데 그 땐 그 사실을 인정했으며 약품도 지원받겠다고 했었다”며 “이럴 때 정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 지난 3월 농업센터 준공식에 참석한 법륜스님이 필리핀 민다나오 주민들과 함께 찍은 사진. (사진제공: 평화재단)

종교지도자 덕목‘도덕성ㆍ투명성’
화제를 바꿔 종교적인 질문을 스님께 했다. 종교지도자가 갖춰야 할 덕목에 대해 묻자 스님은 “종교지도자는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일을 해서는 안 된다. 경제적으로 투명해야 하며 독선적인 행위를 하지 말고 상식적인 수준의 민주적인 방식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어 불자로서의 기본을 묻자 “불자라면 5계(戒)를 지켜야 한다. 사람을 때리거나 죽이는 일, 남의 물건을 빼앗는 짓, 성폭력, 거짓말·욕설, 술 취함 등의 행위를 하지 않는 기본적인 계율만 지켜도 불자의 품위는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단과 사이비에 대한 스님의 생각을 묻자 스님은 이단은 교리 문제를 서로 규정하는 것이므로 객관적인 기준이 모호한 우리나라 종교 상황에서 이단으로 정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답했다.

“‘술 먹으면 건강에 해롭다’라는 말은 맞지만 ‘술 먹으면 지옥 간다’는 식의 협박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재산 갈취, 성적 요구 등은 사이비 종교의 요소에 해당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타종교 간 상생은 상대 인정해야
타종교 간 상생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스님은 “상대를 인정하면 된다. 내 종교가 소중하면 상대의 종교도 소중하다고 인정하면 된다. 그렇지 않으면 싸우게 되고 싸우면 서로 피해본다”며 “종교는 특성상 하나로 통합되는 것은 어렵다. 종교가 교리 문제로 교류할 필요는 없지만 한반도 평화문제, 제3세계 도와주는 것, 환경문제 같은 사회적인 이슈 등은 같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끝으로 스님은 개인과 나라가 주체적인 태도를 가질 것을 당부했다. “개인과 나라가 어려움에 처할 때 남을 탓하는 경우가 있는데 개인이 어려우면 내가 어리석어 자초한 것이며, 나라가 어려움에 처할 때는 나라의 지도자가 어리석어 생긴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며 “한말(韓末) 우리가 똑똑지 못해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다. 그런 실수를 다시는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의 세계정세를 잘 살펴 국가 운명을 잘 이끌어 나가야 한다. 과거처럼 수구·개화파로 나뉘어 싸움해 저질렀던 우(遇)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의 운명은 우리가 결정하며, 자기 운명도 자기가 결정하는 주체적이고 현명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거듭 당부했다.

▲ 2일 열린 천지일보 제1회 천지종교인상을 수상한 법륜스님(오른쪽)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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