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조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로봇/인지시스템연구부 공학박사

지난 주말에는 어느덧 15년차에 접어든 한일 로봇과학기술자 워크샵에 참가하느라 경주에 다녀왔다.

올해의 주제는 ‘정보통신과 로봇 기술을 통한 삶의 질 향상’으로서 두 나라에서 저명한 로봇석학들이 10여명씩 참가하여 진지하게 때로는 즐겁게 자신의 기술을 돌아가며 발표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로봇과학기술자들의 세계적인 인지도는 국제전기전자기술자협회의 로보틱스 및 자동화연구회(IEEE-RAS)에서의 활동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 워크샵에 참여했던 일본인 들 중에는 IEEE-RAS의 현 회장과 전임 회장이 나란히 있었지만, 한국인들 중에는 전임 회장이 한 명도 없었을 뿐더러 활발히 활동하는 사람도 찾기 어려웠다.

우리의 로봇과학기술에 대한 세계의 평가가 그만큼 낮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으리라. 정보통신 분야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어느 과학기술분야나 다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 일본인 참가자를 통해 들은 이야기지만, 일본에서는 본격적인 공학에 관한 연구와 교육을 위하여 현재 동경대학교 이공학부의 전신인 왕립공학대학을 1871년에 설립한 바 있다. 당시에 왕립공학대학은 가장 앞선 과학기술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영국 글래스고 대학 출신의 스코틀랜드인 공학자 헨리다이어를 그의 나이 25세에 초대학장으로 발탁하였다고 한다.

헨리다이어와 영국인 동료들에 의해 공학연구와 교육의 틀을 다진 왕립공학대학은 1886년 동경대학교로 편입되어 일본의 중요한 과학기술 인재들을 꾸준히 배출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 정부관료들의 혁신적인 개혁성향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겠다.

필자가 15년 전 1년간의 방문연구와 일본연구자들과의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크게 깨달은 점은 일본 국가연구소의 연구원들은 한 가지 주제의 연구를 평생 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어 연구자의 전문성이 한국에 비해 매우 깊이가 있고 그것이 국가발전에 큰 힘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일본 사회가 연구원들의 전문성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바로 눈앞의 결과에 연연해하기보다 연구원들의 역할과 능력을 믿고 기다리는 풍토가 잘 정착되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연구개발과제의 잦은 변경으로 한 주제에 집중하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연구원들에게는 실로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연구개발의 메카인 정부출연연구소(출연연)들에 대한 대대적인 개편 논의가 현재 활발히 진행 중에 있다. 기재부, 교과부, 지경부 등 3개 정부부처의 합의하에 과학기술 출연연 발전 민간위원회에서 7개월여의 작업을 거쳐 지난 6월 발전안 보고서를 내놓았고, 이에 기초하여 출연연 개편을 위한 법적 검토가 국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골자는 과학기술의 콘트롤타워로 국가연구개발 예산 및 통제권을 갖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를 두고 그 산하에 일본의 산업기술종합연구소 같은 출연연 통합법인을 추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민간위원회 안을 변형하여 정부부처들이 예산권을 나누어 갖는 정부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연구개발이 주무부처의 소유물처럼 이해된다면 전문성보다는 결과물을 빨리 내는 데 더 힘을 쏟아 선진기술을 따라가는 연구만 강조되고 현 시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전문성 있는 창의적 연구는 더욱 어렵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왕에 일본의 정부출연연구소를 모델로 우리나라 출연연 구조를 개편하기로 하였다면, 하드웨어적으로 연구조직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보다는 조직구성원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여 전문성을 최대로 발휘하게 하는 소프트웨어적인 마인드를 배워 오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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