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초빙교수

올해 밴쿠버 동계올림픽, 남아공월드컵 등으로 반쯤 잊혀졌던 국내 스포츠에서 프로야구가 불꽃같은 생명력을 보이며 관심의 전면으로 등장하고 있다.

프로야구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우승, 2009년 WBC 준우승 등으로 스포츠 팬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올해는 김연아의 피겨스케이팅 첫 금메달, 남아공월드컵 16강 진출 등 대형 국제스포츠 이벤트 등에 가려 영 주목을 끌지 못했다. 그런데 불볕같은 삼복더위로 쫓기는 여름 막판에 본격적인 시선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신문, 방송, 인터넷 매체 등은 연일 국내 프로야구 기사를 주요 뉴스로 내보내고 있다. 기네스북감의 연속 홈런 세계신기록이 작성됐기 때문이다.

롯데의 슬러거 이대호가 연속 홈런 기록을 경신하자 언론들은 호떡집에 불이 난 마냥 부산한 모습들이다. 이대호는 지난 14일 KIA와 광주경기에서 2회 김희걸을 상대로 가운데 펜스를 훌쩍 넘기는 3점 홈런을 뽑아냈다. 지난 4일 두산과 잠실구장 경기 이후 내리 9경기에서 홈런을 쳐냈다. 웬만한 선수라면 한 시즌이 걸려야 작성할 홈런을 불과 열흘 만에 이뤄낸 셈이다.

13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도 8경기 연속 홈런 기록이 최다이며 그것도 단 3차례밖에 나오지 않았다. 1936년부터 막을 올린 일본 프로야구는 8경기 기록은 한 번도 작성하지 못했고 두 차례 7경기 기록만 배출했다. 

그나마 두 나라에서는 현대 프로야구가 꽃을 피운 1990년대 이후로는 관련 기록을 거의 내놓지 못했다. 일본은 오사다하루(요미우리)가 1972년 9월에 7경기 연속 홈런을 친 뒤 1986년 6월 랜디 바스(한신)가 타이기록을 달성했을 뿐이다. 그 뒤 무려 24시즌 동안 이전 기록을 뛰어넘지 못했다.

따라서 국내 언론들은 연속 홈런 세계신기록이라고 분위기를 잔뜩 띄우고 있다. 유난히 더운 올 여름 이처럼 화끈한 이대호의 홈런기록은 팬들에게 시원한 청량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허나 한국야구보다 출범이 훨씬 앞선 미국과 일본야구는 다소 떨떠름한 모습이다. 세계적인 통신사인 미국의 AP는 이대호의 홈런기록을 ‘한국리그 신기록’이라고 한정짓고 있다.

같은 사안을 놓고도 한국과 미국의 언론보도가 큰 차이가 난다. 구장규격에서 한국야구는 미국 메이저리그보다 대체적으로 거리가 짧고 리그 수준차이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나마 일본 언론은 교도통신과 지지통신이 한국 언론의 보도를 인용하면서 이대호의 홈런기록에 대해 미국 AP보다 다소 후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일본구장은 한국구장과 대체적으로 거리가 엇비슷해 일본 언론은 자체 보도보다는 한국 언론을 인용해 이대호에 대해 애써 긍정적인 보도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같이 차이를 보이는 한․미․일의 홈런 신기록 보도자세는 2003년 이승엽(당시 삼성)의 한 시즌 아시아 홈런 신기록 때도 있었다. 이승엽이 그해 56개의 홈런을 기록, 일본의 오사다하루의 1964년 기록을 경신하자 일본 언론들은 아시아 홈런 신기록 수립 사실을 보도하면서도 한국야구의 얇은 선수층과 낮은 경기력 등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한국에서의 기록은 인정하지만 실제적으로 그 의미를 높게 평가하기는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한․미․일 프로야구의 다양한 운영시스템과 시설 차이 등을 고려해 볼 때 동일한 잣대로 개인기록들을 평가하고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따를 수 있다.

엄밀히 말해 야구의 세계 공인기록을 말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일 수 있다. 그러나 희소성이 높은 진기록과 의미가 있는 신기록 등을 애써 축소하거나 무시하려는 자세는 세계 야구 발전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야구는 베이징올림픽과 WBC 등을 통해 이미 세계 정상권 수준의 실력을 보여준 만큼 미국과 일본에서 결코 무시당할 상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야구는 과거의 ‘개발도상국’에서 이제는 어엿한 ‘최상위 선진국’임을 미국과 일본 야구는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국가별 성적은 물론이고 이승엽의 한 시즌 아시아 홈런 신기록에 이어 이대호의 연속 홈런 신기록 등 개인별 선수기량에서도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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