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북한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라도 되는 줄 아나. 밀입북한 한상렬 목사는 남한에 대해서는 별의별 험한 말을 다 하면서 북한 체제에 대해서는 최상의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세계 모든 나라가 남한과 북한의 차이를 천당과 지옥쯤으로 비교하고 있는데 그의 남북한에 대한 현실 인식만은 시대에 크게 동떨어진 것 같다.

보도에 따르면 그는 이른바 북한의 주체사상을 기초로 한 ‘일심단결’과 ‘자력갱생’ ‘혁명적 낙관주의’가 핵무기보다도 더 강한 북한 체제의 3대 무기라고 했다. 한 목사가 말한 핵무기와 이 세 가지가 바로 오늘의 북한을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어려운 생지옥으로 만들어 놓은 것인데 그는 이것을 체제의 붕괴를 막는 북한의 힘이라고 거꾸로 말한 것이다.

과연 그는 굶주리고 핍박받는 수많은 ‘인민’들이 목숨을 걸고 지옥의 땅, 북한 땅을 왜 탈출하고 있는지 알고나 있는가. 탈북자들의 참담한 증언을 한 마디라도 들어나 봤는가. 남한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세계의 자선기관들이 지원하는 식량과 의류, 의료품, 농약과 시멘트를 북한이 목 타게 기다리며 이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을 정녕 그는 모르고 있단 말인가.

이런 현실을 제대로 알고 있다면 헐벗고 굶주리고 핍박받는 북한 인민과 동족인 입장과 양심으로는 차마 이런 현실을 연출한 북한 체제를 일방적으로 칭찬하지 않았어야 옳다.

북한 당국자들은 한 목사를 통일 인사라고 부르며 환대했다. 안내인을 붙여 백두산, 금강산, 판문점, 그들의 혁명 사적지와 관련 박물관 등 북한 전역을 돌며 그들의 체제와 이념을 칭송하게 했다. 한 목사는 제 발로 북에 들어간 사람이므로 그것이 강요였다고 볼 수는 없다.

김일성의 항일 투쟁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보천보박물관에서 그는 ‘총 한 방이 온 민족을 깨우쳐 주었다. 보천보는 계속된다. 외세를 물리치고 통일 평화를 이루자’고 했다. 북한 당국이 보기에 참으로 갸륵한 소리일 것이다.

그를 환영하는 한 군중대회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반통일 분단화, 반민주 독재화, 반자주 예속화, 반민중 빈익빈 부익부화로 우리 민족의 역사를 심히 왜곡하고 근본적으로 망치고 있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온 민족이 공멸할 전쟁 분위기를 몰아오고 있다’면서 ‘역사의 심판대에 세워야 한다’고 격하게 비난했다.
천안함 사건에 대해서는 ‘한국과 미국의 사기극’이라고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되풀이 했다. 이런 언사(修辭, Rhetoric)들은 북한 정권의 말과 노선에 지극히 충실한 것들이다.

이로 미루어 볼 때 한국진보연대의 상임고문이기도 한 한상렬 목사의 진보이념이라는 것은 결국 겨우 북한정권의 사상과 이념을 복제(複製)하고 추종하는 그런 정도의 협량(狹量)한 수준밖에 안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그의 통일운동은 북한에서 그를 아무리 통일인사라고 부른들 더더욱 남한 국민들의 싸늘한 시선과 마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가 만약 남한에 대해 북한이 행하는 핵과 군사력에 의한 협박과 도발행동을 나무라고 인민을 굶기는 체제의 경직성과 폐쇄성, 무능력을 언급이라도 했다면 다소는 관용의 분위기를 만들어 냈을지 모른다. 천안함 사건에 대해서는 지금이라도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해도 늦지 않다는 것을 충고라도 했어야 옳다.

한 목사는 북한이 비중 있게 보는 주요 인사이므로 설사 그랬더라도 인권운동을 하겠다고 북한에 갔다가 무자비한 구타와 고문을 당하고 쫓겨난 한국계 미국인 로버트 박(박동훈)과 같은 험한 대접은 안 받을 것이 아닌가.

인권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열린 글로벌(Global) 사회에서 먹고 살며 학습하고 사회활동을 한 사람이라면 이 정도의 균형 감각과 양식은 보여주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어찌 이렇게 외골수로 북한이 정권 수립 후 지금까지 인민들의 말할 자유, 생각할 자유를 빼앗은 채 체제 유지를 위해 반복 학습시켜오고 있는 교조적이고 편협한 유일사상에 아직도 그렇게 충실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우주를 넘나들어도 모자랄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광대무변하고 자유로운 인간의 사유(思惟)를 껍데기만 남은 좁은 이념의 울타리에 가두어 둔단 말인가. 선택은 자유이고 본인의 의지이지만 그것이 한 목사와 더불어 살고 뒤섞여 살아야만 하는 우리를 안타깝게 하는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단연코 이념의 시대는 갔다. 벽이 허물어졌다. 그럼에도 퇴행적인 이념의 과잉으로 정치가 싸우고 언론이 편갈리고 사회 갈등이 그치질 않지만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부질없고 우매한 것인지를 점차 깨달아 가고 있지 않은가.

국민은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통일의 발자국 소리가 점차 가까워지고 있는 것을 흥분을 누르고 차분하게 듣고 있다. 우리 정부도 그러하다. 그것은 우리를 향해 ‘대비’ 하고 ‘준비’ 하라는 소명의 메시지이지 북한 정권을 향해 가는 ‘복음’의 발자국 소리는 아니다.

북한 정권은 통일을 주체적으로 감당할 능력이 없다. 이럴 때 우리 모두가 할 일은 한 목사와 같이 그와 같은 북한을 찾아가 통일을 주관해야 할 남쪽에 대해 험담할 일이 아닌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우리가 주관하는 통일의 설계에 단 한 사람일망정 이렇게 엉뚱한 곳에 힘을 낭비하는 것은 다가올 통일 민족 공동체와 역사에 대한 작지 않은 배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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