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 의원 원장

40대 총리의 등장으로 시끌벅적하다. 여권에서는 세대교체를 이루는 참신한 내각으로 평하고, 야권에서는 친위 쿠데타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악평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정권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를 차치하더라도 젊은 총리의 등장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고 있다. ‘젊음’이라는 단어 자체가 우리에게 많은 생각과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젊음은 발전과 변화를 상징한다.

에릭 에릭슨이라는 심리학자는 인간의 발달을 여덟 단계로 나누었다. 1~5단계는 청소년기까지의 발달에 해당하고, 그 이후는 성인이 되어서의 발달 과정이다. 6단계는 20~40세까지로서 사회적 친밀감을 형성하는 것이 주된 발달과제다. 이 시기에 일과 사랑, 생산성 등을 추구한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사회적 고립 상태에 놓이게 된다.

7단계는 40~65세까지로서 발전이냐 정체냐의 고비다. 즉 생산성이 더욱 증대되어서 최고의 성취를 이룸과 동시에 다른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거나 자녀 또는 후배들에게 지혜를 가르친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정체 또는 후퇴의 삶을 살게 된다.

마지막 8단계는 65세 이후로서 삶을 통합하는 과정이다. 자신의 인생이 충분히 보람 있었다는 느낌을 가진 채 은퇴를 하고 주어진 남은 삶을 누린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회한과 절망의 여생을 살게 된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살펴보면, 이와 같은 단계와 얼추 맞아 떨어짐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정치인의 삶을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 그들은 일반인의 사회적 발달 단계보다 훨씬 더 늦은 과정을 밟는다. 6단계인 20~40세에 정치에 입문하는 것은 거의 조기 교육 수준이고, 대개 7단계인 40~65세에 정치에 입문하여 성과를 낸다. 또한 8단계인 65세 이후에 정치를 은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히려 지금까지는 이 시기에 꽃을 피우거나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므로 사실 이번의 40대 총리 등장은 큰 사건이다. 정치인의 일반적 발달 단계를 한 번에 뛰어넘는 도약이다. 그는 말했다. “소장수의 아들로 태어나서 42세에 도지사가 되고, 48세에 총리 지명을 받은 사실 자체가 20~30대 청년층에게 희망을 줄 것이다.” 제발 그의 바람대로 되기를 간절하게 희망한다. 현재의 20~30대는 무척 아프기 때문이다.

필자의 진료실을 찾는 젊은 그들은 장기 미취업에 대한 무기력감, 비정규직의 상실감, 실직의 불안, 경쟁에 대한 압박감, 상호 견제적인 분위기에서 타인을 밀어내야 한다는 자괴감, 가족의 부양에 대한 자신감의 저하 등을 호소하면서 괴로워하고 있다.

따라서 40대 총리는 그들에게 대리만족을 안겨다 줄 수 있다. 농촌 출신의 청년은 그가 소장수의 아들이었다는 사실에 동질감을 느낄 수 있다. 40대의 평범한 월급쟁이 가장은 그가 48세라는 사실에 놀라면서도 통쾌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것뿐이랴. 누구는 젊은 나이에 도지사를 거쳐서 총리도 하는데 내 모습은 과연 어떤가의 생각에 미치면 오히려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도 있다. 어느 쪽이 더 맞는지는 내가 희망을 이룰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서 달라진다.

과연 현재의 대한민국은 소장수의 아들로 태어나서도 노력만 하면 누구나 다 성공할 기회를 얻는 사회인지 아닌지 냉정하게 따져 보자. 그리고 앞으로의 대한민국은 또 어떠할지 예측해 보자. 48세 총리는 65세 특임장관의 상급자인가 아니면 얼굴 마담인가, 혹은 58세 대권 유망인의 대항마인지 아닌지도 앞으로의 정부의 모습과 정치의 흐름을 살펴보면서 판단해 나갈 문제다.

그러나 국민의 희망을 살리는 것이 정치인의 임무요, 또 국민의 희망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부의 책무라는 점을 꼭 말하고 싶다. 필자는 앞으로의 진료실에서 일자리 걱정이 아닌 어느 일을 선택할지 고민이라는 상담이 주로 이루어질 날을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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