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대한민국 여자축구 역사가 새로 쓰였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남자축구 월드컵 원정 16강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가운데 날아든 뜻밖의 낭보였다. U-20 여자월드컵 이야기다.  

반가운 소식이기는 하나, 무엇인가 찜찜하다. 고맙다고 해야 하나 미안하다고 해야 하나. 기대는커녕 관심조차 갖지 않았기에 미안했고, 그럼에도 어린 그녀들이 너무나 큰 성취를 이뤄냈기에 고마운 것이다.

우리들로 하여금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함께 밀려들도록 한 태극 낭자들의 중심에 지소연이라는 신통한 선수가 있었다. 당대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아르헨티나의 메시에 빗대 ‘지메시’로 통한다는 그 자그마한 선수로부터 얻는 감동은 이번 축구 이벤트가 던져준 또 다른 선물이다.

봉제 공장에서 바느질을 하는 가난하고 병약한 홀어머니와 반지하에 살면서도 절망하지 않았고, 절망은커녕 오히려 더 씩씩하게 축구공을 찼고 그래서 마침내 그 고단한 그들의 삶에 햇살이 들이차기 시작한 이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스토리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보거라 아이들아, 저 어린 선수가 환경탓을 하고 좌절하거나 용기를 잃었다면 오늘날 저토록 아름다운 성취를 이룰 수 있었겠느냐. 이렇게 그녀의 경이로운 성취를 아이들의 교훈거리로 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선뜻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나 자신이 먼저 부끄러워지기 때문이다.

가난이나 질병을 이겨내고 챔피언이 되는 불굴의 스토리는 스포츠가 던져주는 가장 큰 감동이고 그것을 통해 우리들은 자신을 돌아보고 새로 희망을 품거나 결의를 다져보기도 한다. 영화로도 만들어져 깊은 감동을 안겨준 여자핸드볼팀 이야기도 그렇고,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혹독한 자기수련과 절제로 세계정상에 오른 골프의 신지애 선수도 마찬가지다. 상상하기 어려운 시련의 벽을 깨부수고 목표를 이뤄내는 기막힌 반전들을 보면서 우리들의 영혼도 덩달아 고양되는 것이다.

소아마비로 제대로 걷지 못했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피나는 노력을 한 끝에 올림픽 육상 3관왕에 오른 미국의 전설적인 선수 윌마 루돌프의 이야기도 두고두고 회자되는 감동의 스토리다. 가난했던 그 어머니는 걷지 못하는 어린 딸을 등에 업고 몇 시간 씩 걸어 병원을 오가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윌마, 너는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단다. 그 첫 번째는 네가 목발 없이도 걸을 수 있다는 것이란다.” 어머니의 사랑과 격려가 윌마 루돌프의 기적을 불러온 작은 씨앗이었다. 

어린 아이를 등에 업고 바느질 해 번 돈으로 아이를 키웠으면서도 “제대로 먹이지 못해 아이가 크다 만 것 같다”며 가슴 아파하는 어머니. 그리고 그런 어머니에게 찜질방 딸린 집을 사주고 싶다는, 여태 노트북 컴퓨터 한 대도 가져 보지 못했다는 속 깊은 딸, 지소연.

“다리 하나를 잃는 것은 우연한 사고에 불과하다. 그러나 꿈과 용기를 잃는다면 전부를 잃는 것이다.” 1차 대전에서 한 쪽 다리를 잃었으나 7년간의 혹독한 재활훈련을 거쳐 마침내 알프스 마테호른에 다시 오른 영국의 전설적인 산악인 제프리 윈스롭 영의 말이다.

모녀의 아름다운 이야기에 가슴 짠해지는 아름다운 계절, 다시 용기와 희망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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