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용 서울심포니오케스트라 대표

아무리 험한 세상이라지만 지난 주 부산에서 벌어진 베트남 신부 피살사건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참극이었다. 이제는 본명인 탓티황옥 대신 영문 이니셜 T로 보도된 20살 베트남 신부의 죽음은 한국의 국격이 선진국과는 아직도 한참 거리가 먼 사회임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그녀는 지난 1일 코리안드림을 가슴에 안고 한국에 왔다. 사진 중매를 통해 자신의 아버지 또래인 한국 남편과 신혼생활을 꾸린 그녀가 아는 한국말은 ‘오빠’ ‘아빠’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한국에 온 지 1주일만인 8일 저녁 남편에게 무참히 살해됐다. 경찰조사결과 남편은 지난 8년 동안 57차례에 걸쳐 정신과 치료를 받을 정도로 중증의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고 2005년에는 환청이 들린다며 부모를 폭행하기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은 현재 무분별하게 이뤄지고 있는 국제결혼중개업의 위험성을 여실히 드러내준다. 요즘도 시골길을 가다보면 ‘동남아 신부 구해줍니다. 010-XXX-XXXX’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종종 볼 수 있다. 그만큼 국제결혼이 일반화한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결혼한 30만 9759쌍 가운데 10%가량인 3만 3300쌍이 국제결혼이었다. 농촌의 경우는 최근 결혼한 10명 중 4명이 중국의 조선족이나 동남아 신부와 가정을 이뤘다. 이처럼 국제결혼이 느는 것은 혼기를 놓친 농촌 노총각이 신부를 구할 길은 국제결혼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무분별하게 난립한 국제결혼중개업체들도 국제결혼을 부추긴다. 대부분의 국제결혼은 현지로 간 한국남성과 단체 맞선을 치른 뒤 남성이 한 명을 점찍으면 한두 달 사이에 결혼하고 한국으로 들어온다. 이 과정에서 결혼중개업체나 한국 남성이 나이, 신체적 결함, 재산 정도 같은 정보를 신부에게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경우도 많다. 현재 국내 국제결혼중개업체는 등록업체만 1200개가 넘는다.

이처럼 번갯불에 콩 튀겨 먹듯 졸속으로 결혼이 이뤄지니 가정생활이 제대로 꾸려지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언어장벽과 주변의 시선, 낯선 생활습관이 평화로운 가정생활을 가로막는 것이다. 남편의 상습적인 폭행과 외도 등으로 고통받는 경우도 매우 흔하다. 

한국 농촌에서 국제결혼으로 인한 여러 폐단은 이미 국제사회에서도 여러 번 이슈가 됐었다. 지난해 9월 유엔(UN) 경제·사회·문화 권리위원회는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 여성들이 받는 차별을 줄이도록 한국정부가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을 권고한다”고 시정을 요구했다. 지난 3월 캄보디아는 국제결혼 중개업자가 현지에서 25명을 모아 한국인 남성에게 맞선을 보인 일이 파문을 일으킨 뒤 한국인과의 국제결혼을 금지하는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국제이주기구(IOM)는 지난해 보고서에서 한국 내 캄보디아 여성의 인권 문제를 지적했다. 2007년에도 유엔여성차별철폐협약 등 국제사회가 한국의 결혼 이주여성들이 겪는 열악한 인권실태를 개선하라고 촉구한 바 있다. 국제결혼이 동남아에서 국가 이미지를 추락시키고 반한기류를 조성하는 데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캄보디아의 훈센 총리가 지난해 10월 현지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에게 “캄보디아 며느리가 있다고 생각해 달라”며 한국으로 시집간 캄보디아 여성문제를 특별히 당부까지 했을 정도였다.
이른바 다문화가정의 문제는 이제 개개인의 사적인 문제로 국한해서 방치할 단계를 넘어섰다. 부부의 가정생활만이 문제가 아니다.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2세들의 양육문제도 심각하다. 어머니가 한국말에 서투르다보니 2세들도 말을 익히는 데 어려움이 커 초등학교 저학년생들은 학교에서 ‘초코파이’라고 왕따를 당한다고 한다.

그런데도 정부의 대책은 아직도 한심하다. 다문화가정 문제는 여성가족부의 다문화가족과에서 다루고 있다. 겨우 8명의 직원이 13만이 넘는 다문화가정을 제대로 돌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차제에 최소한 국장급 직제로 격상하거나 아예 별도의 ‘다문화가족청’을 신설하는 방안도 검토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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