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용 서울심포니오케스트라 대표

정부가 쌀 수급 안정을 위해 남아도는 쌀을 동물사료용으로 처분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이 소식을 접하고 필자처럼 1950~60년대에 태어난 세대들 대부분은 만감이 교차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아니 그 귀한 쌀을 짐승에게 먹이다니….”

사실상 사어(死語)가 되어버린 추억속의 단어 ‘보릿고개’를 매년 연례행사처럼 겪어야 했던 우리 세대에게 쌀은 단순한 먹거리 그 이상이었다. 밥그릇에 고봉으로 담긴 하얀 쌀밥은 1년에 서너 번 밖에 구경할 수 없었다. 설날, 추석날, 그리고 조상 제삿날과 아버님 생신날. 그날만은 쌀밥에 고깃국을 제법 양껏 먹을 수 있었다. 물론 너무 과식한 나머지 대개 배탈이 나 고생하곤 했었지만.

이 같은 특식을 맛 볼 수 있는 경우를 제외하곤 대부분 보리밥, 고구마밥, 무밥, 시래기밥 등이 주식이었다. 드물게 형편이 넉넉한 집 아이들의 경우 집에서는 쌀밥을 먹을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학교에서는 보리가 절반 이상 섞인 혼식 도시락을 먹어야 했다. 쌀 보리 혼식이 철저하게 강제되던 시절이어서 수시로 ‘도시락 혼식 검사’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특히나 지난 해 가을에 수확한 쌀 등 양식이 바닥나고, 올해 농사지은 보리가 미처 여물지 않은 오뉴월에는 거의 고구마, 강냉이 등으로 끼니를 때워야 하는 집도 많았다. 그래서 오뉴월을 통상 ‘보릿고개’라 불렀던 까닭이 바로 여기에서 연유한다.

이처럼 귀하고 귀하신 몸이던 쌀이 언제부터인가 남아돌기 시작했다. 쌀이 남아도는 이유는 생산량은 늘어나는데 소비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전년보다 1.8㎏가 준 74㎏이었다. 쌀 소비량은 미곡통계를 내기 시작한 1963년 이후 매년 꾸준히 늘다가 1970년 136.4㎏을 정점으로 등락을 거듭했다. 이후 1984년(130.1㎏)부터 줄곧 감소세다. 특히 2006년부터는 쌀 한 가마니(80㎏) 분량 이하인  78.8㎏으로까지 떨어졌다. 쌀 소비가 주는 까닭은 젊은이들이 밥 대신 육류, 빵, 떡, 국수, 라면, 시리얼 같은 대체식품을 소비하는 추세가 느는 등 식생활 패턴이 변화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쌀 소비의 감소추세가 농정당국에겐 그리 반가운 소식이 아니라는 점이다. 가장 큰 골칫거리는 남는 쌀을 보관하는 문제다. 쌀은 아무리 잘 보관한다고 해도 한 5년이 지나면 질이 나빠져 사람이 먹기에는 적당하지 않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올해 쌀 재고량은 140만t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재고 쌀이 늘면서 이를 보관하기위한 비용도 매년 3천억 원 정도가 낭비되고 있다. 게다가 늘어나는 재고량으로 쌀값이 폭락하면서 농민들도 울상이다. 때문에 정부는 거듭되는 풍년이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고 한다.

쌀 재고가 늘어나자 정부는 쌀을 이용한 과자와 이유식 등 다양한 먹거리를 개발하고 쌀을 이용한 술 제조도 장려하고 있다. 요즘 새롭게 유행하는 막걸리도 쌀이 귀하던 과거엔 고구마나 옥수수를 이용해 만들었다. 쌀로 술을 빚을 수 있게 허가된 1990년 이전까지만 해도 애주가에게 ‘쌀막걸리’는 금단(禁斷)의 술이었다.

재고 쌀 증가 문제의 해결책으로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등 진보단체는 대북 쌀 지원재개를 주장하고 있다. 우리는 2002년 이후 매년 40만t 정도의 쌀을 북한에 지원해오다 이명박 정부들어 상호주의를 내세운 대북강경책이 일반화하면서 지원이 중단됐다. 전농의 주장을 빌면 대북 쌀 지원은 경제적으로도 그다지 손해 볼 일이 아니다. 통일부의 남북협력기금 사용계획서를 토대로 추산하면 지난 2년간 쌀 80만t을 지원했을 경우 약 7천억 원이 소요됐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쌀 80만t 보관비(3600억 원)와 쌀값 하락으로 인한 변동직불금지급액(5000억 원) 등을 합하면 그 비용은 8600억 원으로 불과 1600억 원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북한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며 쌀 지원을 전면 중단한 이 정부의 고집이 쌀 재고 증가라는 부메랑이 돼 버린 현실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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