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대한민국에 이어 일본도 월드컵 8강 진출에 실패했다. 일본은 파라과이와의 16강전에서 졸전 끝에 승부차기로 패했다.

대한민국이 16강 우루과이전에서 경기를 지배하고서도 안타깝게 진 것과 달리, 일본은 시종 답답했다. 승부차기에서 고마노가 실축하고 눈물을 흘렸지만, 경기 내용으로 봐선 그렇게 억울할 것도 없었다.  

일본의 패배를 지켜보면서, 아시아의 자존심을 살려주지 못해 안타까웠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고소하다’는 이들도 많았다. 아무리 점잖게 잘 봐 주고 싶어도 묵은 역사와 여전히 진행형인 영토 문제 등을 생각하면 선하고 아름다운 마음이 싹 가시는 게 어쩌면 자연스러울 수도 있겠다.

축구는 그 나라의 민족성과 문화를 고스란히 반영한다고 했다. 확실히 이번 월드컵에서도 그랬다. 한국은 고추장처럼 화끈했고, 일본은 스시처럼 조심스러웠다. 우리 축구가 고추장 넣고 쓱쓱 비빈 화끈한 비빔밥이었다면, 일본은 조심스레 한 조각씩 생선살을 떠내 만든 스시였던 것이다.

일본은 원래 축구를 그렇게 했다. 잘게 썬 생선살처럼 자박자박 패스를 하고 초밥의 알을 세듯 매뉴얼에 충실한 교과서 같은 축구를 했던 것이다. 이번 월드컵 조별 예선에선 어쩐 일인지 일본답지 않은 축구를 했고 덕분에 16강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16강에선 본연의 스시 축구로 다시 돌아왔고 결과는 싱거웠다.

한국은 승패와 관계없이 늘 화끈했다. 화끈하게 이겼고 화끈하게 졌다. 선수들이 보여준 놀라운 응집력과 융합, 희생정신과 역동성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우리 선수들 각 개인을 놓고 보면, 하나 같이 뚜렷한 개성과 나름의 재주와 능력을 지녔다. 하지만 대한민국 대표라는 이름 아래서 그들은 누구도 자신을 드러내거나 뽐내지 않았다. 그들은 늘 상대를 배려했고 또한 격려했다.

비빔밥이 그렇다. 나름의 독특한 향과 맛을 지닌 식재료들이 고추장을 뒤집어쓰고 쓱쓱 비벼지면, 전혀 색다른 맛의 조합이 이뤄진다. 저 나물인데요, 저 고기인데요, 하고 자아를 드러내지 않아도 입안에서 은근슬쩍 제 존재를 확인시키는 것, 그게 비빔밥의 매력이다.

작년에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인 구로다 가쓰히로가 비빔밥을 얕잡아 본 말을 한 적이 있다. 예쁜 모양을 해 보기 좋은 비빔밥이지만 먹을 땐 숟가락으로 뒤섞어 엉망진창의 모습으로 변한다고 했다. 비빔밥을, 양고기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파는, 양두구육(羊頭狗肉)에 비유했다.

그 사람은 비빔밥의 참맛을 모르는 게 틀림없다. 비빔밥의 정신을 모르는 것이다. 아니면 다 알면서도, 비빔밥이 너무 맛있으니까, 배가 아파 일부러 딴족을 걸어 본 것일 수도 있겠다. 이번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선수들 플레이를 보면서 그는, 그래 저게 바로 비빔밥의 정신이야 하고 속으로 감탄했을지 모른다. 

서로 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일본인들의 생활신조처럼 얌전하게 줄지어 늘어선 스시에서 나는, 융화와 화합, 희생과 배려의 정신을 결코 찾을 수 없다. 나는 비빔밥에서, 스시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그 미덕들을 발견하게 된다.

늘어나고 있는 다문화 가정, 다양한 생각과 가치관들, 이 모든 것들이 대한민국이란 이름 아래 하나로 비벼져야 한다. 대한민국, 더 많이 비벼야 한다.

비빔밥 포에버! 대한민국 포에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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